정치

[편집인 칼럼] 국제유가 폭등에도 '판매가 동결'… 정부는 아직도 위기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양규현 사장 2026-04-13 16:51:16
양규현 경제일보 사장
국제유가가 다시 치솟고 있다. 미·이란 갈등 격화로 전쟁 장기화 우려가 커지면서 에너지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유가는 단순한 가격 변수가 아니다. 산업과 물가, 민생 전반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응은 놀라울 만큼 안이하다. 판매가 동결과 차량 운행 제한 같은 임시방편이 여전히 정책의 중심에 놓여 있다.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대응하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

가격을 억누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발상은 위험한 착각이다. 가격은 시장의 신호다. 이를 인위적으로 억제하면 소비는 줄지 않는다. 단지 왜곡될 뿐이다. 소비자는 현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기업은 비용을 떠안는다. 그 부담은 결국 재정 악화나 미래 세대의 몫으로 전가된다. 가격 통제는 고통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보이지 않게 숨기는 방식일 뿐이다. 그 대가는 더 크게 돌아온다.

문제는 반복되는 무능이다. 중동 리스크, 공급망 불안, 에너지 의존 구조의 취약성은 수십 년째 지적돼 온 사안이다. 그러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정부가 내놓는 해법은 판에 박힌 듯 똑같다. 운행 제한, 절약 캠페인, 가격 통제. 본질은 건드리지 못한 채 표면만 만지는 대응이 반복된다. 이는 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학습되지 않는 정책의 구조적 결함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治大國若烹小鮮(치대국약팽소선)”이라 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지나치게 건드리면 오히려 망친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은 그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다. 

본질을 외면한 채 단기 처방만 반복하고 있다. 이어지는 구절 “上善若水(상선약수)”의 의미는 더욱 무겁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지금의 정책은 흐름을 따르기는커녕 억지로 거스르며 부담만 키우고 있다. 정책이 현실을 거스르면 시장은 더 큰 비용으로 응답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에너지 가격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고통을 감추는 정책이 아니라 고통을 관리하고 분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에너지 믹스 역시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특정 지역과 자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신기술을 균형 있게 활용하는 장기 전략이 불가피하다. 산업과 수송 구조의 효율화 또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정책의 이름과 내용이 따로 노는 상황도 심각하다. 공자는 “名不正則言不順(명불정즉언불순)”이라 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다는 뜻이다. ‘위기 대응’이라는 말은 반복되지만 정작 그에 걸맞은 실질적 조치는 보이지 않는다. 이름과 내용이 어긋난 정책은 신뢰를 무너뜨린다.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눈앞의 부담을 미루는 선택이 결국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국제유가는 외부 변수지만 그 충격의 크기는 내부 준비에 달려 있다. 지금처럼 현실을 외면한 대응이 이어진다면 이번 위기는 또 한 번의 기회 상실로 기록될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버티기’가 아니라 ‘전환’이다.

위기는 늘 선택을 강요한다. 쉬운 길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그 끝은 늘 더 큰 위기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부담을 피하는 정책이 아니라 책임을 감당하는 정책이다. 판매가 동결이라는 익숙한 처방에 다시 기대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