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향후 5년 내 웨이퍼 생산능력을 두 배로 확대하겠다고 처음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SK하이닉스의 중장기 투자 계획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급증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생산능력 확대를 통해 시장 주도권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6' 현장에서 "메모리 병목현상은 2030년까지 계속될 전망"이라며 "향후 5년 동안 웨이퍼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SK그룹이 생산능력 확대 목표를 구체적인 수치로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단순한 투자 계획 발표를 넘어 AI 시대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 자리 잡겠다는 전략적 선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청주·용인·미국까지…SK하이닉스 생산능력 확대 속도
최 회장이 언급한 생산능력 확대는 SK하이닉스가 국내외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투자 계획과 맞물려 있다. SK하이닉스는 청주 M15X를 차세대 D램 생산기지로 구축하는 한편, 청주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에 약 19조원을 투입해 신규 후공정 생산시설인 P&T7을 짓고 있다. P&T7은 약 23만㎡ 규모로 조성되며 올해 4월 착공해 2027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한다.청주는 SK하이닉스의 AI 메모리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존 M11·M12·M15 공장에 더해 HBM 생산을 담당할 M15X와 패키징·테스트 공정 중심의 P&T7이 연계되면 전공정과 후공정을 한 지역에서 묶는 생산 체계가 가능해진다. HBM은 D램을 수직으로 쌓고 이를 고성능 패키징 기술로 연결해야 하는 만큼 웨이퍼 생산뿐 아니라 후공정 역량 확보도 공급 확대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도 중장기 생산능력 확대의 핵심 축이다. SK하이닉스는 용인 클러스터를 차세대 메모리 생산 거점으로 키우고 있으며 첫 번째 팹 건설을 통해 향후 AI 메모리 수요 확대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청주 M15X와 P&T7이 단기 HBM 수요 대응을 맡고, 용인 클러스터가 중장기 생산능력 확대를 뒷받침하는 구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에서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약 38억7000만 달러를 투자해 AI 제품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시설과 연구개발(R&D) 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해당 시설은 차세대 HBM 생산라인을 포함할 예정으로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대한 공급 대응력을 높이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
"더 많이 만들어 달라"…HBM 공급 부족 장기화
업계가 주목하는 부분은 최 회장이 생산능력 확대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강조한 배경이다. 2026년 6월 현재 AI 서버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의 GPU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HBM 확보 경쟁이 동시에 격화되고 있다. 생성형 AI 고도화와 대규모 언어모델(LLM)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투자가 이어지면서 GPU와 HBM을 묶어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빅테크와 서버 업체들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HBM은 일반 D램보다 생산 난도가 높고 웨이퍼 투입량도 많아 단기간에 공급을 늘리기 어렵다. 여기에 D램을 여러 층으로 쌓는 적층 기술과 고성능 패키징·테스트 공정까지 필요해 전공정뿐 아니라 후공정 생산능력도 함께 확보해야 한다. 신규 메모리 팹 건설에는 최소 수년이 걸리고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만큼 공급 확대 속도가 폭발적인 AI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도 지난 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GTC 타이베이 2026 미디어 간담회에서 글로벌 공급망 파트너사들의 지원에도 엔비디아 칩 공급이 여전히 제약되고 있다고 밝혔다. 차세대 AI 가속기 ‘베라 루빈’ 출시를 앞두고 막대한 물량을 확보했지만 시장 수요가 워낙 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황 CEO는 행사장 내 SK하이닉스 부스를 방문해 HBM4E 웨이퍼에 "더 많이 만들어주세요(Please Make More)"라는 문구를 직접 남기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AI 메모리 수요 급증과 공급 부족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으로 평가한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의 웨이퍼 생산능력 확대 발언은 단순한 증설 계획을 넘어 엔비디아를 비롯한 핵심 고객사의 중장기 물량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AI 반도체 경쟁의 무게중심이 기술 선점에서 안정적 공급능력 확보로 확장되고 있는 만큼, HBM 시장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생산능력과 패키징 역량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것이 필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의 이번 생산능력 확대 계획이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경쟁사와의 HBM 경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HBM 시장 선두를 유지해 온 SK하이닉스가 AI 반도체 수요 확대 국면에서 공격적인 투자 기조를 이어가며 격차 벌리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메모리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반도체 공장 건설에는 수년이 걸리는 만큼 공급 확대 속도가 수요를 따라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생산능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재는 수요 증가 속도가 워낙 빨라 공급과 수요 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패키징 공장은 공급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현지 고객과의 협업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북미 고객 대응 역량을 높여 HBM 공급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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