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정보운의 강철부대] 게임기인 줄 알았더니 의료기기였다…XR, 뜻밖의 진화

정보운 기자 2026-06-14 08:00:00
삼성전자, XR 헌혈 캠페인 첫선 통증 완화·재활·의료교육까지 활용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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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삼성전자 수원 디지털시티에서 진행된 '갤럭시 XR'을 활용한 헌혈 캠페인 현장 모습 [사진=삼성전자]

[경제일보] 헌혈 의자에 앉은 참가자가 갤럭시 XR을 착용하자 눈앞에 작은 씨앗이 나타난다. 시선이 머무는 순간 씨앗은 땅에 심기고 꽃과 나무가 자라난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상의 정원이 펼쳐지면서 헌혈에 대한 긴장감도 조금씩 사라진다.

삼성전자가 '세계 헌혈자의 날(6월 14일)'을 맞아 진행한 XR(확장현실) 기반 헌혈 캠페인 이야기다. 얼핏 보면 사회공헌 행사처럼 보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시도를 다르게 바라본다. XR이 게임과 영상 콘텐츠를 넘어 의료·헬스케어 현장으로 진출할 가능성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라는 평가다.
 
게임보다 병원이 먼저 찾는 XR
그동안 XR 시장은 메타버스와 게임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메타는 VR 게임 생태계 구축에 집중했고 애플은 공간컴퓨팅 플랫폼을 내세워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작 XR의 실질적인 활용 가능성이 가장 먼저 검증되고 있는 곳은 게임 시장이 아니라 의료 현장이다.

의료 분야는 XR 기술이 가진 강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다. 환자의 시야를 가상 공간으로 전환해 불안과 공포를 줄일 수 있고 몰입형 콘텐츠를 통해 통증에 대한 인식을 완화할 수 있다. 복잡한 장기 구조를 입체적으로 구현하거나 실제 수술과 유사한 환경을 구현해 의료진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다.

이번 삼성전자의 헌혈 캠페인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애보트,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국내 헌혈 현장에서 처음으로 XR 기기를 활용했다. 참여자는 갤럭시 XR을 착용한 상태에서 시선만으로 꽃씨를 심고 가상 정원을 감상하는 명상형 콘텐츠를 체험했다.

손을 움직이거나 별도 컨트롤러를 사용할 필요 없이 시선 추적 기술만으로 콘텐츠를 조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헌혈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과 지루함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통증 줄이고 재활 돕고…의료 현장으로 향하는 XR
사실 XR과 의료의 결합은 이미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수술실에서는 XR 기반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의료진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의과대학생과 전공의들은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하기 전 가상 환경에서 수술 절차를 반복 학습할 수 있다.

재활치료 분야에서도 XR 활용이 늘고 있다. 반복적인 재활 운동을 게임 형태로 구현해 환자의 참여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뇌졸중이나 근골격계 질환 환자들의 운동 치료 과정에 XR을 접목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정신건강 분야 역시 대표적인 활용 영역이다. 공황장애나 공포증 환자가 가상 환경에서 단계적으로 자극에 노출되며 치료를 진행하는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치과 치료나 주사, 화상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주의를 분산시켜 통증을 완화하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XR은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기기가 아니라 사람의 감각과 인지를 변화시키는 도구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 XR의 진짜 전장은 게임이 아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번 헌혈 캠페인을 단순 사회공헌 활동 이상의 의미로 해석한다. XR 시장이 예상보다 더디게 성장하면서 업계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수백만원대 기기를 구매해야 할 만큼 강력한 킬러 콘텐츠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헬스케어 분야는 XR이 가장 먼저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시장으로 꼽힌다. 게임처럼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역시 이번 협업을 통해 갤럭시 XR이 엔터테인먼트와 업무를 넘어 사회적 가치 확산 플랫폼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 병원과 의료기관, 헬스케어 기업 등과의 협업 확대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 스마트폰이 전화기에서 생활 플랫폼으로 진화했듯 XR 역시 단순한 차세대 디바이스를 넘어 새로운 산업 플랫폼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의외로 게임 속 가상세계가 아닌 병원과 헌혈의 집일 수 있다. XR의 첫 번째 킬러 앱은 게임이 아니라 의료 현장에서 탄생할지도 모른다.

강철부대의 시선이 머무는 곳, XR 생태계 역시 더 이상 미래 가능성만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게임과 콘텐츠 중심의 기대감보다 실제 고객이 존재하고 비용 절감과 경험 개선 효과를 입증할 수 있는 산업 현장이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술 경쟁의 승부처는 화려한 비전이 아닌 실증 레퍼런스와 사업화 가능성으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XR의 첫 번째 킬러 앱이 게임이 아닌 병원에서 탄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