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바둑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이 현존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카타고와의 3번기에서 1패 뒤 2연승을 거두며 역전승했다. 인간이 AI보다 강해졌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압도적인 계산력을 가진 AI를 상대로 인간이 승리 전략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신진서는 21일 서울 중구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 최종 3국에서 카타고를 상대로 221수 만에 흑 11집 반승을 거뒀다.
지난 17일 1국에서 패한 신진서는 19일 2국에서 290수 만에 4집 반승을 거뒀다. 최종국까지 잡으면서 종합 전적 2승1패로 대회를 마쳤다.
이번 대국은 신진서가 흑돌 2개를 먼저 놓는 2점 접바둑으로 진행됐다. 흑이 약 18집 앞선 상태에서 출발하는 조건이다. 그럼에도 신진서가 사전 연습에서 거둔 승률은 약 10%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 최고 기사에게 두 점을 양보하고도 카타고가 우세하다고 평가받을 만큼 인간과 AI의 기력 차이가 벌어졌다는 의미다.
승부를 가른 것은 계산력이 아니라 전략이었다. 신진서는 최종국에서 돌이 복잡하게 얽히는 전투를 피하고 귀와 변의 실리를 먼저 확보했다. 전투가 많아지면 수읽기와 경우의 수 계산에서 AI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보고, 초반에 확보한 우세를 집으로 전환하는 데 집중했다.
1국에서 카타고의 변칙적인 첫 수에 흔들렸던 신진서는 2국부터 접근법을 바꿨다. AI가 추천하는 수를 따라 두는 대신 자신에게 익숙한 흐름으로 판을 설계하고 불필요한 충돌을 줄였다. 최종국에서는 초반 우세를 한 차례도 내주지 않고 11집 반 차이로 승부를 끝냈다.
신진서는 “AI 수법을 따라 하다 전투가 많이 일어나 쉽게 진 기억이 많았다”며 “AI를 모방하는 것보다 제 스타일대로 판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이 AI를 상대로 버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카타고는 미국 컴퓨터과학자 데이비드 우가 개발한 오픈소스 바둑 AI다. 프로기사들이 포석 연구와 복기, 형세 판단에 활용하면서 현대 바둑의 사실상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 신진서 역시 AI 연구를 통해 성장한 대표적인 세대로, 이번 대결은 AI로 훈련한 인간이 AI의 약점을 어떻게 공략하는지를 보여준 경기이기도 하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은 인간과 AI의 경쟁 구도를 상징했다. 이후 AI는 인간의 경쟁자를 넘어 훈련 도구로 자리 잡았고, 프로기사들의 포석과 수읽기 방식까지 바꿨다. 10년 뒤 열린 이번 대국은 인간이 AI를 이길 수 있느냐보다 AI 시대에 인간의 판단과 창의성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무대에 가까웠다.
다만 이세돌과 알파고의 호선 대국과 이번 결과를 직접 비교해서는 안 된다. 신진서에게 두 점의 이점이 주어진 만큼 인간의 기력이 AI를 다시 넘어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의미는 AI의 수를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조건에 맞는 전략을 선택한 인간의 적응력에 있다.
한편 신진서는 대국료 1억5000만원과 2승에 따른 승리 수당 1억원을 받는다. 부상으로 제네시스 G90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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