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현장] 프리즈 안엔 신세계, 키아프 밖엔 현대…백화점 '아트 VIP' 공략법

정보운 기자 2026-09-03 17:42:54
신세계, 프리즈 전시장 안에 독자 라운지 현대百, 키아프 VIP 라운지·백화점 연계 프로그램 컬렉터·백화점 VIP 고객층 맞물려…아트페어로 문화 브랜딩·고객 관리 강화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프리즈 서울 2026' 전시장 모습 [사진=정보운 기자]

[경제일보] 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은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과 구매 상담을 나누는 컬렉터,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미술계 관계자들로 분주했다.

관람객들은 형형색색의 회화와 조형물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한참동안 작품을 바라봤다. 마음에 드는 작품은 카메라에 담았고 소장하고 싶은 작품을 발견한 관람객은 곧장 갤러리 관계자에게 가격과 작품 정보를 물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미술계 관계자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안부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코엑스에서는 국내 최대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 2026'과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2026'이 동시에 열리며 서로 다른 색깔의 미술시장을 한자리에서 선보였다.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서울 2026' 전시장 모습 [사진=정보운 기자]
 
같은 코엑스, 다른 온도…프리즈 '여백'·키아프 '다채로움'
프리즈 전시장에 들어서자 공간 분위기부터 한층 정제돼 있었다. 넓은 흰 벽에 작품 몇 점만 여유 있게 배치한 부스가 많았고 작품과 작품 사이에도 충분한 여백이 느껴졌다. 크기가 압도적인 대형 작품과 한눈에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운 미니멀한 작업이 한 공간에 어우러지면서 전시장 자체가 하나의 고급 쇼룸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갤러리 직원과 컬렉터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조용히 작품 상담을 이어가는 모습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반면 키아프 전시장은 한층 다채롭고 활기찬 인상이었다. 강렬한 색채의 회화부터 인물과 풍경을 직관적으로 담아낸 작품, 크고 작은 조형물까지 장르와 분위기가 각기 다른 작품들이 부스마다 이어졌다. 한 부스를 지나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 등장하는 식이어서 전시장을 걷는 동안 시선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관람객들도 눈에 띄는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며 비교적 자유롭게 전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같은 코엑스에서 열린 두 아트페어였지만 관람 방식에는 분명한 온도 차가 있었다. 키아프가 다양한 장르와 작품을 폭넓게 펼쳐 보이며 '둘러보는 재미'를 줬다면 프리즈는 작품 수와 공간 여백을 조절해 개별 작품과 갤러리의 존재감을 보다 또렷하게 드러내는 인상이었다.

두 아트페어가 각기 다른 관람 경험을 보여주는 사이 유통기업들도 현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고가 미술품을 구매하는 컬렉터와 미술 애호가 상당수가 백화점 최상위 VIP와 명품·고급 소비재 핵심 고객층과 맞물리는 만큼 올해 프리즈에서는 신세계그룹이, 키아프에서는 현대백화점이 각각 전용 공간과 고객 프로그램을 앞세워 이들을 맞이했다.
 
'프리즈 서울 2026' 전시장 내 위치한 '신세계 라운지' 입구 모습 [사진=정보운 기자]
 
프리즈 안으로 들어간 신세계…전시와 '브랜드 공간' 사이
프리즈 전시장 내부에 마련된 '신세계 라운지'는 일반적인 기업 홍보 부스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곳곳에 배치된 큐레이터가 작품을 설명했고 내부에는 프랑스 작가 폴 콕스의 색채감 강한 작품들이 이어졌다. 여기에 에코백 증정 이벤트까지 더해지면서 차분한 갤러리와 감각적인 팝업의 요소가 한 공간에 공존했다.

라운지에서는 폴 콕스 특별전 'L'Immensité du Quotidien: The Monumental Everyday'를 열고 작가가 수년간 매일 저녁 명상을 불투명 수채물감으로 기록한 'Diary' 연작 336점을 한꺼번에 공개했다. 라운지 외관에도 작품을 대형 이미지로 구현해 프리즈 전시장을 오가는 관람객의 시선을 끌었다.

신세계가 이처럼 프리즈 한복판에 그룹 이름을 내건 별도 공간을 만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신세계그룹은 올해부터 오는 2030년까지 5년간 프리즈 서울의 헤드라인 파트너로 참여한다. 단순 행사 후원보다 프리즈라는 글로벌 문화 플랫폼 안에서 신세계가 구축해온 공간과 콘텐츠 이미지를 직접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프리즈 서울 2026' 전시장 내 위치한 '신세계 라운지' 내부 모습 [사진=정보운 기자]

행사장 밖에서도 프리즈와의 연결을 이어갔다. 스타필드 코엑스몰 별마당도서관에서는 사진작가 구본창의 '달항아리' 연작 등을 전시하고 클래식 공연도 마련했다. 프리즈 티켓이 없는 방문객도 이용할 수 있는 공간까지 문화 프로그램을 넓힌 것이다.

이 같은 행보는 신세계가 60여 년간 이어온 문화예술 사업의 연장선에 있다. 1963년 문을 연 신세계갤러리를 시작으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트리니티 가든, 스타필드 별마당도서관, 조선호텔앤리조트 아트 프로그램까지 계열사 공간 곳곳에 문화예술 콘텐츠를 접목해왔고 이번 프리즈 파트너십을 통해 그 무대를 글로벌 아트페어 현장으로까지 넓혔다.
 
'키아프 서울 2026' 전시장 외부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VIP 라운지' 모습 [사진=정보운 기자]
 
키아프 밖에 자리 잡은 현대百…VIP '머무는 공간'에 집중
프리즈 전시장 안에서 그룹 문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운 신세계와 달리 현대백화점은 키아프를 VIP 고객이 머물고 교류하는 공간으로 풀어냈다. 키아프 전시장과 같은 층 외부에 마련된 현대백화점 VIP 라운지는 화이트 톤의 차분한 인테리어로 꾸며졌고 내부에는 작품 전시와 함께 관람객이 쉬어갈 수 있는 카페와 널찍한 좌석이 마련됐다. 작품을 둘러보던 고객들은 음료를 받아 들고 천천히 전시를 감상하거나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라운지에는 도예가 강석영과 섬유·설치 작가 정소윤의 작품이 전시됐다. 신세계 라운지가 프리즈 전시장 안에서 하나의 독립된 전시 공간처럼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현대백화점 라운지는 장시간 작품을 둘러본 VIP 고객이 머물며 쉬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에 가까웠다.
 
'키아프 서울 2026' 전시장 외부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VIP 라운지' 외관 모습 [사진=정보운 기자]

현대백화점과 키아프의 관계는 올해로 5년째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2022년 한국화랑협회와 국내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이후 매년 키아프 공식 후원사로 참여해왔다.

올해는 현장 라운지를 넘어 백화점 내부 프로그램까지 키아프와의 연계를 넓혔다. 개막일인 지난 2일 무역센터점에서는 키아프 VIP와 현대백화점 우수 고객을 대상으로 작가 프레젠테이션과 리셉션을 결합한 '아트 이브닝: 6분40초의 미학'을 진행했고 압구정본점·무역센터점·판교점·더현대 서울 문화센터에서는 키아프 프리뷰 강좌인 '하이스트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전시와 작품 구매로도 이어진다. 전국 주요 점포에서 진행 중인 '2026 더현대 아트스테이지'를 통해 압구정본점과 목동점 등에서 회화와 현대 공예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일부 작품은 온라인몰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키아프 현장에서 시작된 미술 경험을 VIP 행사와 문화센터 강좌, 점포 전시, 온라인 판매까지 이어가는 방식이다.
 
'키아프 서울 2026'에 전시된 한 작품 모습 [사진=정보운 기자]
 
프리즈는 '브랜드', 키아프는 '스펙트럼'…유통사 아트 전략 달랐다
두 유통기업의 전략이 달랐던 것처럼 키아프와 프리즈가 기반을 둔 미술시장도 차이가 있다. 2002년 시작한 키아프 서울은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국내 최대 규모 아트페어로 올해 25주년을 맞아 18개국 175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국내 갤러리를 중심으로 해외 갤러리까지 폭넓게 참여하고 현대미술부터 근현대·전통미술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2003년 영국에서 출발한 프리즈는 2022년 아시아 최초 개최지로 서울을 택한 글로벌 아트페어다. 올해는 30개 국가·지역에서 130개가 넘는 갤러리가 참여했으며 가고시안·하우저앤워스·글래드스톤·리슨 등 세계 미술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갤러리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초반 전시장에서 체감한 분위기 차이도 이 같은 구성에서 비롯됐다. 키아프가 국내 미술시장의 다양한 장르와 참여 화랑을 폭넓게 보여주는 장이라면 프리즈는 글로벌 주요 갤러리와 작가를 중심으로 각 브랜드의 색깔과 존재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성격이 강하다.

두 아트페어의 성격 차이는 유통기업들의 참여 방식에서도 확인됐다. 신세계는 프리즈 안에서 그룹의 문화 브랜드를 직접 보여주는 데 집중했고 현대백화점은 키아프를 기존 VIP 고객 프로그램과 백화점 콘텐츠로 연결했다. 같은 아트페어 후원이라도 신세계는 공간 브랜딩에, 현대백화점은 고객 관리에 방점을 찍었다. 작품을 보기 위해 코엑스를 찾은 사람들 사이에서 두 백화점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VIP 고객과의 관계를 넓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