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사법부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라고 불린다. 입법과 행정이 실패했을 때 국민의 권리를 지켜야 하는 최후의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법부에 요구되는 신뢰의 기준 역시 다른 국가기관과 같을 수 없다. 국민 다수가 판결의 공정성을 믿지 못한다면 그 순간 사법의 권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조희대 대법원장의 발언은 적지 않은 의문을 남긴다. 조 대법원장은 사법개혁 입법인 이른바 ‘사법 3법’을 두고 사실상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며 사법 불신이 과장됐다는 취지의 설명을 내놓았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 사법 시스템 신뢰도 47%라는 수치였다. 미국은 35%인데 한국은 47%라는 비교도 덧붙였다.
그러나 사법 신뢰는 단순한 통계로 설명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법부는 정치권이나 행정기관과 같은 일반 권력기관이 아니다. 국민 권리의 최종 판단을 맡는 기관이다. 그런 사법부를 국민 절반만 신뢰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경고 신호에 가깝다. 국민 절반이 믿지 않는 사법을 두고 “신뢰가 낮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 인식 자체가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사법 불신은 하루아침에 생긴 문제도 아니다. 권력 사건 판결을 둘러싼 논란 전관예우 의혹 재판 지연 문제 등은 오랫동안 사법 신뢰를 갉아먹어 온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국민이 사법을 의심하는 이유는 통계가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된다. 사법부가 마주해야 할 것은 수치가 아니라 국민의 체감이다.
조 대법원장은 또 세계은행 조사와 국제 평가 지표를 언급하며 한국 사법 제도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제 지표는 제도와 절차의 효율성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국민이 느끼는 공정성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도 판결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사법의 권위는 설 수 없다.
해외에서 한국 사법 제도를 배우려 한다는 설명도 본질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제도와 절차는 참고할 수 있다. 그러나 사법 신뢰는 결국 그 사회 내부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외국의 평가로 국민이 느끼는 불신을 덮을 수는 없다.
이번 논란에서 더 우려되는 점은 조 대법원장의 태도다. 사법개혁 입법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상황에서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사법부가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는 모습은 사법 독립을 강조해 온 사법부의 원칙과도 어긋난다.
사법부가 정말 신뢰를 말하고 싶다면 먼저 국민의 눈높이에서 현실을 봐야 한다. 국민 절반도 신뢰하지 않는 사법을 두고 스스로 높은 평가를 말하는 순간 사법부와 국민 사이의 거리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은 사법부를 대표하는 자리다. 그 말 한마디가 사법부 전체의 권위를 좌우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어가 아니라 책임 있는 성찰이다.
사법의 권위는 스스로 선언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국민이 믿을 때 비로소 세워진다. 국민 절반이 믿지 않는 사법을 두고 신뢰를 말하는 순간 사법의 위기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조희대 대법원장은 책임을 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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