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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절차를 버린 사법부, 조희대 대법원장은 물러날 때다

한석진 기자 2026-03-09 16:47:40
조희대 대법원장 [연합뉴스]

[경제일보] 지난해 5월1일 오후 3시. 전국에 생중계된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주문을 낭독하던 순간 조 대법원장의 손은 심하게 떨렸다. 판결문이 흔들릴 정도였다.

40년에 가까운 법관 경력의 대법원장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그 떨림은 단순한 긴장이 아니라 이 판결이 불러올 파장을 예감한 모습처럼 보였다.
 

문제의 핵심은 판결의 결론이 아니다. 법원 판결은 누구에게는 만족스럽고 누구에게는 불만일 수 있다. 사법부가 신뢰를 얻는 이유는 결과 때문이 아니라 절차가 공정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바로 그 절차다. 대법원은 항소심 무죄 판결이 나온 지 불과 35일 만에 사건을 뒤집어 파기환송했다. 최근 5년간 대법원이 35일 안에 선고한 형사 사건은 1800여 건이다. 그 가운데 2심 판결을 뒤집은 사건은 이 사건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공직선거법 사건의 경우 조희대 대법원장이 강조해 온 ‘6·3·3 원칙’이 있다. 1심 6개월 항소심 3개월 상고심 3개월 안에 재판을 끝낸다는 기준이다. 그러나 실제 통계를 보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선거법 사건의 평균 심리 기간은 113일이었다. 이번 사건의 세 배가 넘는다.
 

결국 이 사건은 이례적인 속도로 처리된 사건이었다. 대법원 스스로도 이를 인정했다. 같은 해 10월 1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법원행정처 조병구 사법지원실장은 “이 사건 진행이 매우 이례적이었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답했다.
 

기록 송부와 송달 과정 역시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진행됐다. 6만 쪽에 이르는 소송 기록이 항소심 선고 이틀 만에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송달 절차 역시 일반적인 우편 송달을 생략하거나 특별 송달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으로 속도를 높였다. 법원 직원 집행관 재판부 법원장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러한 속도전이 단순한 행정 효율성의 문제였다면 논란은 여기까지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 사건이 조기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에 진행됐다는 점이다.

 

사법부가 정치 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을 다룰 때는 평소보다 더 엄격한 절차적 중립성이 요구된다.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 사법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재판은 정반대의 인상을 남겼다. 
 

재판이 공정했는지 여부는 결국 국민의 인식에 의해 판단된다. 절차에 대한 의문이 커질수록 판결의 권위도 함께 흔들린다.
 

지금 사법부가 직면한 위기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재판의 결과가 아니라 재판의 방식이 사법부 신뢰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는 순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책임 있는 태도다.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독립을 상징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사법 행정의 최종 책임자다. 사법부가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의문 속에 놓여 있다면 그 책임 역시 대법원장이 져야 한다.
 

사법부의 권위는 판결문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그 신뢰가 흔들린 지금 조희대 대법원장은 스스로 거취를 결단할 때가 됐다. 사법부의 명예를 위해서도 그것이 가장 책임 있는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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