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딥인사이트

[사설] 호르무즈 파병, 동맹과 에너지 안보 사이의 정교한 선택 필요하다

2026-03-16 10:34:14
지난해 12월 13일 경남 거제도 앞 해상에서 해군 청해부대 대원들이 해적에게 선박이 피랍된 가상의 상황을 가정해 훈련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5개국에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이란이 항전 의지를 천명하면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을 돌파했고 세계 경제에는 다시 긴장이 감돌고 있다. 해협을 이용하는 국가들이 직접 항로 안전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이른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운 것이다. 정부는 “한미 간 긴밀히 소통하며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번 사안을 단순한 외교적 수사 차원에서 넘길 문제는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경제의 ‘경동맥’이다. 국내 원유 수입의 약 7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절대적인 우리에게 해협 봉쇄는 곧 에너지 안보의 마비를 의미한다. 유가 급등은 물론 환율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민생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번 파병 요구를 단순히 동맹의 ‘안보 청구서’로만 해석해선 안 되는 이유다. 우리의 에너지 생존권을 지키는 문제라는 현실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이란 군사작전에 전면적으로 가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은 기뢰와 드론, 소형 고속정 등 비대칭 전력이 집중된 긴장 지역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주도의 공세적 군사 행동에 깊숙이 관여할 경우 우리 군의 안전은 물론 그동안 유지해 온 중동 국가들과의 외교·경제 관계에도 심각한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이란과의 직접적인 충돌은 우리 선박에 대한 보복 공격 가능성을 높이는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유사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해법을 찾은 경험이 있다. 2020년 정부는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일시적으로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대했다. 동시에 미국 주도의 연합체(IMSC)에 정식 편입되지 않고 독자 작전 형태를 유지했다. 이는 한미 동맹에 대한 협력 의지를 보이면서도 이란을 자극하지 않는 절충적 해법이었다. 이른바 ‘청해부대 모델’이다. 이번 상황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리의 역할이 단순한 병력 지원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 분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 상선을 스스로 보호하는 방식으로 해상 안전에 기여하는 것이 미국의 작전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군 파병은 장병의 생명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국회의 동의와 국민적 합의를 거치는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해야 한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통상 압박 등 다양한 요구를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호르무즈 파병 문제를 능동적으로 관리한다면 한미 관계의 다른 현안을 조율하는 과정에서도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할 여지가 생긴다.

결국 관건은 실리와 명분의 균형이다. 동맹의 신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에너지 생존권을 지키고 군사적 긴장을 최소화하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념이나 정파적 시각을 배제하고 오직 국익이라는 기준에서 판단해야 한다. 호르무즈의 파고를 넘는 해법은 동맹과 국익을 함께 지키는 냉정한 현실 외교에서 찾아야 한다.
0개의 댓글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