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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롤러코스피의 오명, 자본시장 신뢰부터 다시 세워야

경제일보 2026-07-16 10:45:14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우리나라 증시가 이른바 '롤러코스피', '홀짝 증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은 지 오래다. 하루는 급등했다가 다음 날에는 급락하는 극심한 변동성이 반복되면서 투자자들은 시장의 방향성을 예측하기보다 운에 기대야 하는 현실에 내몰리고 있다. 

글로벌 거시경제 변수와 미국 기술주 흐름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구조 속에서 한국 증시는 독자적인 상승 동력을 잃었고, 개인투자자들의 피로감은 한계에 이르렀다. 결국 국내 증시를 떠나 미국 등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른바 '국장 탈출' 현상마저 일상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투자 성향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본시장은 기업의 성장 자금을 공급하고 국민에게는 안정적인 자산 형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경제의 혈맥이다. 증시가 활력을 잃으면 기업의 투자와 고용도 위축되고, 국가 경제의 성장 기반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부와 금융당국의 대응은 단기적인 시장 안정책에 머물러 있을 뿐,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수 방어가 아니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구조 개혁이다.

한국 증시의 가장 큰 고질병은 세계가 지적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우리 기업들의 실적과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에 근접했지만, 시장에서는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 배경에는 낙후된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 친화성이 부족한 경영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대주주 중심의 의사결정, 소액주주의 권익을 외면하는 경영 관행, 물적분할 이후의 중복 상장, 그리고 지배력 유지를 위한 불투명한 기업 운영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시장에서는 "한국 주식은 장기 투자할수록 손해"라는 자조가 나오는 현실이다. 이러한 인식이 굳어진다면 국내 자본은 물론 해외 투자자들까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역시 방향성은 옳지만 실효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자율적 참여와 공시 확대, 세제 지원만으로는 수십 년간 고착된 지배구조를 바꾸기 어렵다. 시장은 선언이 아니라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뿐 아니라 전체 주주에 대해 부담하도록 명확히 하는 법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사회가 특정 지배주주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도록 만드는 것이 자본시장 선진화의 출발점이다.

주주 권익 보호 장치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물적 분할과 합병, 대규모 구조조정 등 소액주주의 재산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서는 공정한 보상과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더욱 정교하게 보완하고,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자사주 소각 활성화, 합리적인 상속세 제도 개선 등을 통해 기업이 이익을 주주와 적극적으로 공유하도록 유도하는 세제 개편도 병행되어야 한다. 기업이 현금을 쌓아두기보다 투자와 배당을 통해 시장과 성과를 공유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다. 자본시장은 숫자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결국 신뢰 위에서 작동하는 시장이다. 신뢰를 잃은 시장에는 자금도, 투자도, 미래도 머물지 않는다. 지금 한국 증시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이나 경기 순환이 아니라 시장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붕괴에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자본시장 선진화를 정쟁의 대상이 아닌 국가 경쟁력 강화의 핵심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기업 또한 소액주주를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기업의 공동 주인으로 존중하는 경영 철학을 확립해야 한다. 

투명한 지배구조와 책임 있는 경영, 공정한 시장 질서가 확립될 때 비로소 '롤러코스피'라는 오명을 벗고 한국 증시는 국민의 자산을 키우고 세계 자본을 끌어들이는 진정한 선진 자본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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