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HD현대중공업이 제작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진공용기 섹터가 조립과 설치 단계에 들어가면서 HD현대의 미래 에너지 사업이 본격적인 확장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핵융합 핵심 설비에서 입증한 초대형·고정밀 제작 역량을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원자력 추진선 사업으로 연결한다는 전략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전날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 ITER 건설 현장에서 열린 ‘코리아-ITER 퓨전 데이’에 참석했다. 행사는 한국이 제작을 주도한 마지막 진공용기 섹터 모듈의 조립 완료와 토카막 피트 안착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진공용기는 핵융합 반응에 필요한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둘러싸고 고진공 상태를 유지하는 핵심 장치다. 핵융합실험로의 ‘심장’으로 불리며, 9개의 섹터 모듈을 연결해 무게 약 5000t의 도넛 형태 구조물로 완성된다.
HD현대중공업은 전체 진공용기 섹터 9개 가운데 4개를 제작했다. 2010년 한국에 배정된 2개 섹터를 수주한 데 이어 유럽연합(EU) 물량 2개까지 추가로 맡아 2024년 전량 인도했다. 한국은 당초 배정량의 두 배를 제작하며 프로젝트 내 역할을 확대했다.
각 섹터는 높이 11.3m, 폭 6.6m, 무게 약 400t에 달한다. 초대형 구조물이지만 9개 섹터가 오차 없이 맞물려야 하는 데다 프랑스 원자력 압력용기 법령과 국제 원자력 기술 기준, ITER의 품질·안전 요건을 충족해야 해 제작 난도가 높다.
HD현대중공업은 선박과 해양플랜트를 건조하며 축적한 대형 구조물 제작, 특수용접, 정밀계측, 품질관리 기술을 활용했다. 회사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행사에서 ITER 국제기구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HD현대는 이번 경험을 SMR 기자재 사업으로 연결하고 있다. 핵융합과 원자력 발전은 에너지 생성 원리가 다르지만, 극한 환경을 견디는 설비 제작과 엄격한 품질·안전 관리가 요구된다는 점에서는 공통분모가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2년 미국 SMR 기업 테라파워에 3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2024년 12월에는 테라파워가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에 건설 중인 345MW급 나트륨 원자로에 들어갈 원자로 용기 제작 사업을 수주했다.
협력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HD현대와 테라파워는 2025년 3월 나트륨 원자로 상용화를 위한 제조 공급망 확대 협약을 체결했다. 올해 5월에는 HD현대중공업이 원자로 격납시스템의 핵심 설비를 제작·공급하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HD현대는 SMR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선박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미국 휴스턴에서 용융염원자로와 초임계 이산화탄소 발전시스템을 적용한 1만5000TEU급 원자력 추진 컨테이너선 설계 모델을 공개하고 미국선급협회로부터 기본인증을 받았다. 회사는 2030년까지 원자력 추진선 기술 개발을 완료한다는 목표다.
조선·해양플랜트에서 출발한 HD현대의 제작 역량은 핵융합 설비와 육상 SMR 기자재, 해상 원자력 시스템으로 확장되고 있다. ITER 진공용기 제작 실적은 당장 상업 핵융합 사업으로 이어지기보다 차세대 원자로 설비 시장에서 기술력과 품질관리 능력을 입증하는 레퍼런스로 활용될 전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원전과 미래 에너지 분야로 사업이 확대되는 것은 긍정적”이며 “ITER 진공용기 섹터 9개 가운데 4개를 제작해 납품한 경험은 향후 차세대 원자로 설비 사업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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