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코스피가 하루 만에 10% 넘게 폭락했다. 지난 28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0.84% 내린 6023.66으로 거래를 마쳤다. 장중 낙폭은 11.3%까지 커졌고 시장 전체의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도 발동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4% 넘게 떨어졌다. 외국인은 약 5조원어치를 순매도했고 개인은 4조원가량을 받아냈다. 거래 종목 917개 가운데 오른 종목은 36개에 불과했다.
직접적인 충격은 글로벌 반도체주 매도세였다. 중국 메모리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성공적인 증시 상장과 중국의 노광장비 기술 진전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과 시장점유율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인공지능 투자 과열과 반도체 수요의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의문도 매도세를 부추겼다.
그러나 이번 폭락을 중국 반도체 기업이나 외국인 매도, 공매도 세력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외부 충격이 거셌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충격을 코스피 전체의 붕괴로 키운 것은 한국 증시의 편중된 구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가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두 종목이 흔들리면 업종과 실적이 다른 수백 개 기업까지 함께 추락하는 구조다.
한국 증시는 반도체 호황을 타고 빠르게 올랐다. 코스피는 지난 6월 9114.55까지 상승했지만 이후 반도체주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불과 한 달여 만에 고점 대비 34% 밀렸다. 7월 하락률만 29%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10월의 월간 하락 폭까지 넘어섰다. 상승할 때는 반도체가 시장 전체를 끌어올렸지만 하락할 때도 같은 종목들이 지수 전체를 끌어내린 것이다.
특정 산업의 경쟁력이 증시를 이끄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미국 증시도 대형 기술기업의 영향력이 크다. 문제는 반도체를 제외하고 시장을 떠받칠 만한 두 번째, 세 번째 성장축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자동차와 바이오, 조선, 방산, 콘텐츠, 금융 등 경쟁력 있는 산업이 존재하지만 기업가치와 주주 신뢰를 높여 장기자금을 끌어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외국인 수급 의존도도 낮춰야 한다. 외국인이 대규모로 매도하면 이를 받아줄 국내 장기투자 기반이 취약하다. 개인투자자는 시장이 급락할 때 저가 매수에 나서지만 단기 손실을 감당할 능력이 제한적이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공모펀드 등 장기자금은 경직된 운용규정과 낮은 주식 비중, 투자자 불신에 묶여 있다. 외국인 자금이 빠질 때마다 환율과 주가가 동시에 흔들리는 천수답 구조가 반복되는 이유다.
장기투자자가 부족한 것은 단순히 자금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지배구조와 주주환원, 회계 투명성에 대한 불신도 장기투자를 가로막는다. 실적이 좋아도 지배주주의 결정에 따라 합병과 분할, 자사주 처분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다면 투자자는 장기 보유보다 단기 차익을 택하게 된다. 증시 안정은 매매 규제를 강화하는 것보다 기업이 주주의 신뢰를 얻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최근 도입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변동성을 키웠는지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필요할 경우 개인투자자의 투자 한도를 제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특정 대형주 주가를 두 배로 추종하는 상품은 상승장에서 수익을 키우지만 하락장에서는 매도 압력을 증폭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시장이 급락할 때마다 공매도를 금지하거나 가격 제한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공매도 불법행위와 시세조종은 엄벌해야 하지만 정상적인 가격 발견 기능까지 막으면 외국인 투자자의 불신과 시장 왜곡을 키울 수 있다. 서킷브레이커도 공포를 진정시키는 안전장치이지 주가 하락 자체를 막는 수단은 아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시장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주가 수준을 떠받치려 하기보다 구조적 취약성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선 반도체 이외의 성장기업이 증시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산업정책과 자본시장 정책을 연결해야 한다. 성장기업의 상장을 활성화하되 부실기업의 우회 상장과 과도한 공모가 책정은 엄격히 걸러내야 한다.
퇴직연금과 연기금 등 장기자금이 국내 우량기업에 안정적으로 투자할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 주주환원 확대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자사주 제도 개선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기업의 장기 성장을 유도해야 한다. 시장이 신뢰를 얻지 못한 채 세제 혜택만 확대한다고 장기투자가 늘지는 않는다.
기업들도 반도체 호황이 영원할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연구개발과 인재, 공급망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주주와 시장에 기술 격차와 투자 성과를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중국 기업의 부상을 단순한 저가 공세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생산능력과 기술 자립 속도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대비해야 한다.
<서경>의 ‘거안사위(居安思危)’는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한국 증시는 반도체가 사상 최고치를 끌어올릴 때 편중의 위험을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 이제 시장이 무너진 뒤 투기세력과 공매도만 탓한다면 같은 충격은 다시 반복될 것이다.
반도체는 한국경제와 증시의 강력한 엔진이다. 그러나 하나의 엔진에만 의존하는 시장은 그 엔진이 멈추는 순간 전체가 흔들린다. 코스피 10% 폭락이 보여준 것은 반도체 산업의 실패가 아니라 반도체밖에 믿을 것이 부족한 증시의 취약성이다. 시장을 살리는 길은 주가를 임시로 떠받치는 데 있지 않다. 산업을 다변화하고 장기자금을 키우며 기업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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