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얼마 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을 찾은 데 이어 다음 달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가 방한한다. 세계 기술 기업들이 잇따라 한국을 찾는 이유는 이제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이 글로벌 산업에서 반드시 협력해야 할 수준까지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찾아온 협력 기회를 반기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한국 기업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협력의 주도권을 쥐고 글로벌 기업들을 끌어들이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이 구축한 공급망 안에서 핵심 부품과 기술을 공급하는 역할에 집중했다.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도 협력의 방향과 기준은 글로벌 기업이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였지만 산업의 흐름을 설계하는 위치에 서지는 못했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산업의 경쟁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첨단 패키징, 데이터 센터 냉각, 전력 인프라, 차세대 원전 등 핵심 기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어느 한 기업이나 국가가 모든 분야를 독자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글로벌 기업들도 필요한 기술을 가진 국가와 기업을 직접 찾아 협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한국은 이미 AI 산업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차세대 AI 메모리와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LG전자는 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맞춰 냉각공조(HVAC) 사업을 빠르게 확대하는 중이며, 한국 원전 산업 역시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에너지 분야에서 글로벌 협력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젠슨 황에 이어 빌 게이츠까지 한국을 찾는 것도 결국 이런 산업 경쟁력을 확인하고 협력하기 위해서다.
이제는 한국 기업들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글로벌 기업이 협력을 제안하면 이에 맞춰 움직이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기술 경쟁력이 높아진 만큼 공동 연구개발과 투자, 공급망 구축, 기술 표준 논의에서도 한국이 먼저 의제를 제시하고 협력을 이끌어야 한다.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방향을 결정하는 위치로 올라설 때 산업 경쟁력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지금은 기술력을 인정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 기업들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산업 질서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돼야 한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한국을 먼저 찾는 지금은 협력의 주도권을 넓힐 수 있는 기회다. 그 기회를 한국 기업들이 먼저 붙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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