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완성차·배터리 CEO 협상 전면화…경쟁 축 '기술→선점' 이동

정보운 기자 2026-03-26 16:18:11
LG엔솔·르노, 삼성SDI·BMW…납품 넘어 동맹으로 수조원 계약·공동개발 확대 완성차는 공급망, 배터리는 고객 선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LG 트윈타워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전기차 캐즘 속 수요 둔화로 배터리 수주 경쟁이 격화되면서 완성차와 배터리 업계가 '고객·공급망 선점'을 놓고 최고경영자(CEO) 간 톱레벨 협상에 돌입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되는 이른바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국면이 길어지면서 배터리 산업의 경쟁 축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생산능력과 기술력이 수주를 좌우했다면 최근에는 수요가 제한된 상황에서 완성차는 안정적 배터리 공급망 확보에, 배터리 기업은 주요 고객 선점에 나서면서 양측 간 장기 계약이 경쟁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배터리 업계는 그동안 전기차 시장 확대에 맞춰 공격적인 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에 집중해왔다. 수요가 공급을 웃돌던 시기에는 일정 수준의 생산 능력과 품질만 확보하면 자연스럽게 물량이 따라오는 구조였다. 그러나 전기차 판매 성장세가 둔화되고 완성차 업체들이 투자 속도를 조절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완성차는 공급망 확보에, 배터리 기업은 고객 선점에 나서면서 양측 간 계약 구조가 실적을 좌우하는 국면으로 전환됐다는 평가다.

이 같은 변화는 협상의 무게 중심을 실무에서 최고경영자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배터리 공급 계약은 수조원대 규모에 5~10년 이상 이어지는 장기 계약이 일반적인 데다 단순 납품을 넘어 공동 개발과 플랫폼 전략까지 맞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번의 계약이 향후 사업 구조를 좌우할 수 있는 만큼 기업 수장이 직접 나서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 프랑스 르노그룹은 다음달 초 한국을 찾아 LG에너지솔루션과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일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르노는 이미 LG에너지솔루션으로부터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물량 확대와 차세대 배터리 적용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관계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국내 배터리 업계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SDI는 유럽 완성차 업체인 BMW와 폭스바겐 등 기존 고객사와의 협력 강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메르세데스-벤츠 등 신규 고객 확보를 위한 공급 협상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완성차 업체와의 장기 파트너십이 향후 수년간의 공급 구조를 좌우하는 만큼 '선점 효과'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도 배터리 확보는 더 이상 단순한 구매 문제가 아니다. 배터리 성능과 가격이 전기차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전략적 과제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완성차와 배터리 기업 간 관계도 기존의 '납품'에서 '동맹'에 가까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향후 배터리 산업의 경쟁 구도를 재편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다시 성장 궤도에 진입할 경우 현재 확보한 협력 관계가 곧 시장 점유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캐즘 국면이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완성차의 공급망 확보와 배터리 기업의 고객 선점 여부가 시장 주도권을 좌우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전기차 수요가 둔화된 현 시점에서는 배터리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고객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파트너 모두가 제한되는 만큼 완성차와 배터리 기업 간 선제적 협력 확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배터리 공급 계약은 수조원 규모의 장기 계약과 공동 개발이 결합된 형태가 일반적이어서 한 번 체결되면 향후 수년간 공급 물량과 수요처가 고정될 가능성이 크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도 배터리 수급 안정성과 가격 경쟁력이 전기차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면서 공급망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현재 캐즘 국면에서 형성된 협력 관계가 시장 회복기 점유율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이 사실상 향후 주도권을 가르는 분기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르노와의 기존 배터리 공급 협력을 기반으로 추가적인 협력 확대 가능성에 대해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전기차뿐 아니라 에너지저장장치(ESS)와 휴머노이드 등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도 주요 고객사와의 장기 계약과 선제적 협력 확보의 중요성이 이전보다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