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데스크칼럼] 조희대 대법원장, 이제 거취로 답할 때다

한석진 기자 2026-08-19 10:27:57
조희대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노태악 대법관 후임 후보는 지난 1월 21일 이미 4명으로 압축됐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를 추려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넘겼다. 조 대법원장이 한 사람을 골라 제청하면 되는 단계였다.
 

그런데 제청은 이뤄지지 않았다. 노 대법관은 후임 없이 3월 3일 퇴임했다. 조 대법원장은 당시 기자들에게 대통령실과 협의하고 있다며 제청이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 뒤에도 대법관 자리는 계속 비어 있었다. 조 대법원장은 8월 18일에야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새 대법관 후보로 제청했다.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후보가 압축된 지 209일 만이다.
 

이번에는 방식도 달랐다. 대통령실과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처럼 대통령을 직접 찾아 제청하지도 않고 서면으로 후보를 올렸다.
 

3월에는 대통령실과 협의하고 있어 제청이 늦어진다고 했다. 8월에는 그 협의 없이 제청했다. 협의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대법관 자리를 다섯 달 넘게 비워둔 이유부터 설명해야 한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정하고 있다. 대통령과 사전에 합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누구를 제청할지는 대법원장의 권한이고 그 권한을 제때 행사할 책임도 대법원장에게 있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헌법은 권한을 나눠놨다. 대법원장은 제청하고 대통령은 임명하며 국회는 동의 여부를 판단한다. 헌법이 권한을 나눈 것은 의견이 다를 때 책임까지 미루라는 뜻이 아니다.
 

사법부 독립을 내세워도 달라질 것은 없다.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을 제청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과 의견이 다르다면 대법원장이 자신의 판단대로 후보를 제청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면 된다. 그것이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독자적인 제청권을 준 취지다.

 

조 대법원장은 후보가 추려진 뒤에도 결정을 미뤘다. 그러다 이흥구 대법관의 9월 7일 퇴임이 다가오자 두 명을 한꺼번에 제청했다. 국회 인사청문과 임명동의 절차를 감안하면 대법관 두 자리의 동시 공석 가능성까지 만들어졌다.
 

재판 지연을 줄이겠다던 대법원이 정작 최고법원의 구성조차 제때 갖추지 못했다. 후보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법이 막은 것도 아니다. 제청권자가 결정을 미뤘다. 그 결과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논란이 대법관 인사에서 처음 나타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에서 재판의 속도와 전원합의체 운영을 두고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의문이 제기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은 소부에 배당된 당일 전원합의체로 넘어갔다. 회부 9일 만에 파기환송됐다. 대법원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속도였다.
 

김건희씨 사건에서는 반대의 장면이 나왔다. 소부가 두 차례 선고기일까지 잡았는데 두 번째 선고를 하루 앞두고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한 사건에서는 전에 없던 속도를 냈고 다른 사건에서는 잡아놓은 선고가 멈췄다.
 

사건마다 적용 법리와 사실관계는 다르다. 그렇다고 최고법원의 절차와 시간까지 아무런 설명 없이 달라져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대법원이 사건마다 다른 속도와 방식을 택했다면 그 차이를 국민이 납득할 만큼 설명했어야 했다. 
 

이번 대법관 인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됐다. 대통령실과 협의 중이라며 시간을 끌다가 다섯 달이 지나자 협의 없이 제청했다. 재판에서 불거졌던 기준과 설명의 부재가 대법관 인사에서도 이어졌다.
 

법원은 국민에게 절차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기관이다. 제출기한을 넘기면 책임을 묻고 법이 정한 절차를 어기면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법원의 최고 책임자라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때부터 더 엄격해야 한다.
 

대법원장은 판결문만 쓰는 자리가 아니다. 전국 법원을 이끌고 대법관을 제청하며 사법행정 전체를 책임지는 헌법기관의 장이다. 대법원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일도 대법원장의 몫이다.
 

그런 자리에서 대법관 한 자리를 다섯 달 넘게 비워뒀다. 제청 지연 이유로 대통령실과의 협의를 들었지만 마지막에는 그 협의 없이 후보를 올렸다. 사법부 수장에게 요구되는 일관성과 책임 있는 판단을 보여줬다고 하기 어렵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3월 한국 사법부의 신뢰도가 미국보다 높다는 국제조사 결과를 거론했다. 사법 신뢰를 숫자로 말할 때가 아니었다.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일이 거듭되면 그 이유를 설명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일이 먼저다.
 

재판의 속도에서 시작된 논란은 전원합의체 운영을 거쳐 대법관 인사까지 이어졌다. 기준에 대한 의문은 쌓였고 이를 풀어줄 설명은 부족했다. 이제 개별 사건의 판단 차이로 넘길 단계는 지났다.
 

대법원장이 사법 신뢰를 지키기는커녕 불신의 중심에 섰다면 임기를 채우는 것이 책임은 아니다. 대법원장의 자리가 사법부의 권위를 지키는 자리가 아니라 사법부 신뢰를 갉아먹는 자리가 돼서는 안 된다.
 

사법부의 권위는 대법원장이 자리를 지킨다고 유지되지 않는다. 국민이 대법원의 판단과 절차를 믿을 때 유지된다. 그 신뢰를 흔든 책임은 사법부 수장이 져야 한다. 사법부를 지키려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물러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