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기획] 인덱스펀드 출범 반세기…저비용 앞세워 美 펀드시장 절반 장악

전지수 인턴 2026-08-19 11:32:06
초라한 출발 딛고 '저비용' 무기로 50년만에 시장 대세 '반전' "패시브 아니다"…지수 선택부터 자산배분까지 능동적 판단 대형주 쏠림 속 가격왜곡 우려에도 지배력은 더 커질 전망
[사진=AI 생성 이미지]

[경제일보] 인덱스펀드가 미국에서 출범한지 이달로 50주년을 맞았다. 인덱스펀드는 저비용을 앞세워 미국 현지 펀드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다. 거대 자금 쏠림에 따른 대형주 위주의 가격 왜곡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나 그럼에도 탁월한 비용 효율성 덕분에 향후 인덱스펀드의 시장 지배력은 한층 공고해질 것으로 풀이된다.

인덱스펀드는 펀드매니저가 개별 종목을 골라 사고파는 대신 특정 주가지수에 포함된 종목을 구성 비중 그대로 담아 지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이런 인덱스펀드는 그동안 대다수 전문 펀드매니저가 운용한 펀드보다 좋은 성과를 냈다. 주가가 오르내림에 관계없이 시장 평균 수익률을 그대로 따라간 결과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수료를 떼는 액티브 펀드보다 나은 성적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19일 영국 경제·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 내 인덱스펀드 자산은 전체 투자펀드 순자산의 절반을 넘어섰고 국내 주식형만 놓고 보면 6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는 인덱스펀드가 '주식을 잘 고르는 능력'보다 '시장을 값싸게 소유하는 능력'이 대다수 투자자에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명확한 벤치마크를 기준으로 운용내역이 투명하고 보수도 낮아 확률적으로 유리한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반세기가 더 지나도 이런 흐름은 한층 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초라했던 출발, 반세기 만에 美 투자펀드 순자산 절반 이상 지배
50년 전 '뱅가드 최초 인덱스 투자신탁'이 등장했다.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뱅가드 창립자 잭 보글은 이를 두고 '철저한 실패'라고 자평했다. 그는 5000만~1억5000만 달러(약 707억7500만~2123억2500만원)를 모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모금액은 1100만 달러(약 155억7050만원)에 그쳤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500만 달러(약 919억8800만원) 수준이다.

이 펀드는 미국 대표 주가지수인 S&P500을 추종한 최초의 개인투자자용 상품이었다. 당시 금융업계 반발은 상당했다. 한 금융전문지는 인덱스펀드를 투자자의 포기에 불과한 유행으로 깎아내리며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런 조짐은 찾아보기 어렵다. 업계 단체인 미국투자회사협회(ICI)는 미국 투자펀드 순자산의 절반 이상이 인덱스 추종 상품에 몰려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미국 국내 주식형 펀드로 좁히면 그 비중은 64%까지 올라간다. 지난 5월 기준 ICI 집계에서도 장기 뮤추얼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틀어 인덱스 상품 자산은 21조8200억 달러(약 3경875조3000억원)로 전체의 53.8%를 차지했다. 미국 국내 주식형에서는 이 비율이 63.9%였다. 개인 저축이든 회사 퇴직연금이든 대학 기금이든 상당수 투자자가 이미 최소 하나 이상의 인덱스펀드에 발을 담그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인덱스펀드 성장으로 설 자리를 잃은 전문 주식선택자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지난 2016년 브로커 회사 번스타인은 인덱스 투자를 "마르크스주의보다 더 나쁘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지난달에는 영국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펀드매니저 테리 스미스가 반기 투자자 서한에서 자신의 부진한 성과 상당 부분을 인덱스펀드가 지배하는 시장 탓으로 돌렸다.
 
패시브의 역설…선택은 끝나지 않았다
패시브(Passive)는 통상 펀드매니저의 별도 판단 없이 특정 지수의 구성종목과 비중을 그대로 따라가는 운용방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다만 인덱스펀드를 이런 패시브로 부르는 것 자체가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짚었다. 지난 50년간 인덱스펀드가 시장 구조를 바꿔놓은 데다 인덱스펀드 투자 자체에도 생각보다 많은 능동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가장 먼저 어떤 지수를 추종할지부터 선택의 문제다. 유럽 주식에 투자한다면 대형주 50개로 구성된 유로스톡스50을 고를지 396개 종목을 포함하는 MSCI유럽을 고를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갈린다.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할 때도 마찬가지다. 다수 투자자가 나스닥100을 통해 '패시브'하게 투자하지만 나스닥100은 기술주 비중이 커 금융이나 부동산 같은 주요 산업은 사실상 빠져 있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설명이다. 지수를 추종한다는 선택 자체가 이미 하나의 투자 판단인 셈이다.

전 세계 시장을 포괄하는 FTSE 글로벌 올캡처럼 1만개가 넘는 기업을 담은 지수를 고른다고 해도 물음표는 남는다. 진정한 의미의 완전한 패시브 투자를 하려면 주식뿐 아니라 투자 가능한 모든 자산이 담긴 '시장 포트폴리오'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모대출 △부동산 △미술품 △고급 와인까지 포함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런 구성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주식과 채권 인덱스펀드를 6대 4로 배분하는 것도 엄연히 능동적 판단이라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진단이다.

인덱스펀드 자체도 완전히 패시브하지는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뱅가드 주식부문 책임자 로드니 코메기스는 "인덱스펀드 운용사들이 일반 투자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재량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초 인덱스펀드가 출시됐을 당시 펀드 규모가 작아 S&P500 구성종목을 모두 살 수 없었던 탓에 약 300개 종목만 표본으로 편입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운용사가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매매 시점을 조정하거나 특정 시점 대량 매매로 발생할 불리한 가격을 피하기 위해 거래 전략을 바꾸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페이스X 같은 기업이 새 지수에 편입되면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들은 반드시 주식을 사야 하는데 이 사실이 시장에 미리 알려지면 주가가 편입 전부터 움직일 수 있다. 운용사는 이럴 때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거래를 조정한다. 일부 인덱스펀드는 공매도 투자자에게 주식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아 수익률을 높이기도 한다.
 
몸집 커질수록 커지는 '가격 왜곡' 우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인덱스펀드가 자산가격 자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규모가 커졌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가는 실제 거래로 결정되는 만큼 거래 빈도가 낮은 인덱스펀드가 전체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다. 그럼에도 여러 연구는 인덱스펀드가 시장 가격을 왜곡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대표적인 것이 '비탄력적 시장 가설'이다.

인덱스펀드 같은 고정배분 펀드로 1 달러(약 1414원)가 주식시장에 유입되면 전체 시가총액이 3~8 달러(약 4243~1만1316원) 오를 수 있다는 게 이 가설의 핵심이다. 다만 이는 특정 연구의 추정치로 모든 시장과 상황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은 아니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인덱스펀드로 유입되는 자금이 몸집이 큰 기업 주가를 불균형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이런 흐름이 주식시장 거품을 키우고 소수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리뷰오브파이낸셜스터디즈에 따르면 패시브펀드로 들어가는 자금이 경제에서 몸집이 가장 큰 기업 주가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시장 수요가 높은 대형 기업일수록 이런 효과가 두드러졌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런 우려가 인덱스펀드에서 자금을 빼야 한다는 근거는 되지 않는다는 게 중론으로 보인다. 주가가 급락하든 급등하든 인덱스펀드는 시장 평균을 그대로 따라가 장기로 보면 시장 평균을 추종하는 인덱스펀드가 평균 이상 성과를 노리는 개별 주식 선택자보다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액티브 투자자는 시장 평균 대비 더 높은 수수료 부담을 추가로 져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코노미스트는 "50년 뒤 인덱스펀드가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며 "인덱스펀드 시대는 끝난 게 아니라 이제 막 더 강력해지고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