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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상임위원장 독식론, '승자의 저주'를 부르는 오만한 발상

양규현 사장 2026-03-24 12:00:00
양규현 경제일보 사장
[경제일보]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을 앞두고 정치권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집권 여당의 수장 격인 정청래 대표가 상임위원장 자리를 여당이 모두 차지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으면서다. 과거 그의 정치적 궤적과 거침없는 행보를 돌이켜볼 때, 이는 단순한 협상용 엄포나 기싸움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압승’이라는 성적표를 손에 쥔 여당이 의회 권력의 고삐를 완전히 틀어쥐고 국정 운영의 속도전을 벌이겠다는 노골적인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물론 여당의 입장에서 보자면 작금의 야당 행태가 눈엣가시 같을 것이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모습이나, 대안 없는 비판으로 국정의 동력을 깎아 먹는 야당의 현실을 보며 "차라리 우리끼리 책임지고 하겠다"는 유혹에 빠질 법도 하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지리멸렬한 정쟁에 지쳐 "일 좀 하게 다 밀어줘라"는 목소리가 나올 법하다. 하지만 정치란 현실의 감정을 배설하는 장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고도의 이성적 과정이어야 한다.

노자(老子)는 《도덕경》 제9장에서 '금옥만당 막지능수(金玉滿堂 莫之能守)'라 했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해도 이를 능히 지켜낼 수 없다는 뜻이다.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 그 힘을 남용하여 모든 것을 독점하려 드는 순간부터 권력은 부패하고 무너지기 시작한다. 의회 민주주의의 핵심은 '견제와 균형'이다. 상임위원장 배분은 단순히 자리를 나누는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감시하고, 여야가 서로의 정책적 독주를 막아내기 위해 수십 년간 쌓아온 암묵적인 질서이자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한다는 것은 야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봉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이는 정국 운영을 협치(協治)가 아닌 독단(獨斷)으로 끌고 가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다. 아무리 야당이 밉고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국민의 엄연한 선택을 받은 대의 기관이다. 여당의 정책이 늘 옳을 수는 없으며, 정부의 국정 수행 과정에는 반드시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빈틈을 찾아내고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야당의 숙명적 역할이다. 싹을 자르는 식의 원 구성은 결국 여당 스스로 '오류의 수렁'에 빠지게 만드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고전 《서경(書經)》에는 '원수채수(怨豈在明 隔夷怨在)'라는 말이 나온다. 원망은 밝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통이 단절된 막힌 곳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소수파를 무시하고 다수의 힘으로 몰아붙이는 정치는 당장은 시원해 보일지 모르나, 사회 밑바닥에 불만과 갈등의 에너지를 축적시킨다. 응축된 갈등은 결국 폭발하기 마련이고, 그 비용은 온전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정치는 '옳음'을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조율하는 예술이기도 하다.

지금 여당에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포용의 리더십'이다. 강한 자가 자신을 낮추고 상대의 존재 가치를 인정할 때 진정한 권위가 선다. 야당이 부족해 보일수록 여당은 더욱 인내하며 대화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상임위원장 자리를 전리품 챙기듯 독식하는 행태는 민주주의의 기본 상식에 어긋날뿐더러, 훗날 정권이 바뀌었을 때 똑같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명분을 만들어주는 꼴이다.

정청래 대표와 여당 지도부는 부디 '승자의 저주'를 경계해야 한다. 칼자루를 쥐었다고 해서 모든 고기를 혼자 썰어 가져가려 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여당의 전용 안방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공론장이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타락하고, 비판 없는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야당의 비판이 비록 가시 돋친 독설일지라도, 그것을 국정의 오답을 수정하는 '쓴 약'으로 삼는 대범함이 필요하다.

독단은 짧고 협치는 길다. 눈앞의 효율성을 위해 의회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원성을 훼손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길 바란다. 여당 단독의 질주는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진정으로 국가를 위한다면, 미운 야당을 끌어안고서라도 함께 가는 가시밭길을 택해야 한다. 그것이 30년 넘게 이 땅의 정치를 지켜본 필자가 확신하는 정법(正法)이자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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