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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데스크칼럼] 가뭄 끝에 기록적 폭우, 기후재난 대책을 평균값에 맞춰선 안 된다

한석진 기자 2026-08-18 10:05:53
17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옥포동 한 차도가 범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이달 초까지만 해도 경남은 비를 기다렸다. 8월 2일 정부는 밀양댐의 가뭄 단계를 ‘경계’로 올렸다. 밀양댐 저수율은 33%까지 떨어졌고 올해 댐 유역 강우량은 예년의 52%에 그쳤다. 6월 21일 이후 내린 비만 따지면 예년의 12% 수준이었다. 정부는 밀양강과 낙동강 물을 대신 끌어오고 농업용수 공급량까지 줄였다.
 

농촌 사정도 다급했다. 6월부터 7월 말까지 경남에 내린 비는 162㎜로 평년의 33%에 불과했다. 밀양지역 저수지 저수율은 32.6%까지 내려갔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현장을 찾아 가뭄 대책을 점검할 정도였다. 그런데 불과 보름 뒤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15일부터 17일까지 거제에는 900㎜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평년 여름철에 내릴 비와 맞먹는 양이 사흘 만에 내렸다. 17일에는 한 시간에 124.5㎜가 퍼부었다. 1972년 거제에서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후 시간당 강수량 최고 기록이다. 기상청은 이를 2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의 강우로 분석했다.
 

통영에서도 시간당 97.4㎜가 내려 관측 이래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가뭄을 걱정하던 땅이 며칠 만에 물에 잠겼고 거제에서는 산사태가 아파트를 덮쳐 인명피해까지 났다. 이제 가뭄과 폭우를 서로 다른 재난으로만 볼 때가 지났다.

 

문제는 비가 많이 오느냐 적게 오느냐가 아니다. 오랫동안 오지 않다가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이 문제다. 물이 없을 때와 넘칠 때 사이의 간격도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기상청의 장기 관측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지난 113년 동안 우리나라의 연간 강수일수는 10년마다 0.68일씩 줄었지만 연강수량은 오히려 17.83㎜씩 늘었다. 비 오는 날은 줄었는데 내릴 때 더 많은 비가 쏟아진다는 뜻이다. 강수강도와 호우일수도 늘었다. 문제는 우리 방재시설과 재난대책이 이런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느냐다.
 

방재기준이 단순한 평균 강수량만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확률강우량과 재현기간까지 따진다. 하지만 그 계산 역시 결국 과거 관측기록에서 출발한다. 과거 수십 년의 기후가 앞으로도 비슷한 범위에서 반복된다는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도 지난해 말 지역별 방재성능목표의 기초가 되는 확률강우량을 30년 빈도에서 50년 빈도로 높였다. 이에 따라 기존 50년 빈도 수준이던 방재성능목표가 평균적으로 100년 빈도 수준까지 올라가게 됐다. 극한호우가 잦아진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그런데 기준을 고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거제에서는 200년 빈도로 평가되는 비가 내렸다. 방재기준을 고치는 속도보다 기후가 변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뜻이다. 재난대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짜야 한다.

 

모든 하천과 하수관을 무작정 크게 만드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대신 기존 기준을 넘어서는 비가 반복되는 지역을 수시로 다시 살펴야 한다. 산사태 위험지역과 지하차도, 반지하 주택, 하천변 도로처럼 한 번 사고가 나면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곳에는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시설 확충이 어려운 곳은 통제와 대피 기준을 더 엄격하게 잡아야 한다. 거제처럼 한 시간에 100㎜가 넘는 비가 쏟아지면 배수시설만으로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하루 강수량보다 어느 지역에 몇 시간 동안 얼마나 집중될 것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때는 도로를 먼저 막고 주민을 먼저 대피시키는 것이 재난대책이다.
 

가뭄과 홍수 대책도 한 틀에서 다뤄야 한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댐과 저수지에 물을 확보해야 하지만 집중호우가 예상되면 홍수를 막기 위한 공간도 필요하다. 농업용 저수지와 다목적댐, 하천, 도시 배수시설을 제각각 관리해서는 대응 시기를 놓치기 쉽다.
 

물이 부족할 때와 넘칠 때를 하나의 물관리 문제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 이번 경남의 가뭄과 폭우가 그 필요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물이 없어 농업용수 공급을 줄이던 지역에서 보름 뒤 산사태로 사람이 숨졌다. 가뭄대책과 수해대책을 각각 만들어 놓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방식으로는 이런 재난을 따라가기 어렵다.
 

‘평년’이라는 말도 다시 봐야 한다. 평년은 과거 날씨를 설명하는 숫자이지 앞으로 닥칠 재난의 상한선이 아니다. 한 해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하더라도 한 달 가까이 비가 오지 않다가 하루 이틀 사이에 수백㎜가 쏟아진다면 주민이 겪는 기후는 전혀 다르다.
 

기후는 평균보다 양끝에서 더 거칠어지고 있다. 재난대책도 평균에서 벗어나야 한다. ‘평년에 얼마나 내렸는가’가 아니라 물이 오지 않을 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쏟아질 때 얼마나 큰 비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과거 날씨의 평균으로 미래 재난을 막을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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