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러나 임명권자에게만 책임지는 자리는 아니다. 검찰과 교정, 출입국, 인권과 형사사법 행정을 총괄하고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까지 떠맡는 자리다.
그래서 법무부 장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과의 적절한 거리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3일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취소 논란에 선을 그었다. 김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공소취소를 할 직접적인 권한도 없고 검찰총장을 통해 지휘할 생각도 지금 없다”고 밝혔다. 개별 사건의 공소유지는 공판검사의 권한이며 이를 존중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문제는 과거 발언과의 간극이다. 김 후보자는 의원 시절 이 대통령 사건의 공소취소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해왔다. 관련 의원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았고, 이 대통령 사건은 국가가 바로잡아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도 폈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정치인의 입장이 공직에 따라 달라지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국회의원과 법무부 장관은 역할과 책임이 다르다. 의원은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자리지만 장관은 법과 절차를 집행하는 자리다. 오히려 장관 후보자로서 과거 정치적 주장과 거리를 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말 한마디로 우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권한의 유무보다 신뢰의 문제다. 법무부 장관에게 직접 공소를 취소할 권한이 없다는 설명은 맞다. 현행 체계에서 개별 사건의 공소유지와 취소는 검사가 판단한다. 다만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하며,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한다. 이 때문에 장관의 과거 정치적 입장과 현재의 태도는 형사사법 시스템의 신뢰와 직결된다.
더욱이 대상이 현직 대통령의 형사사건이라면 기준은 한층 엄격해진다. 법무부 장관이 과거 대통령 사건의 공소취소를 주장했다면 국민은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장관이 된 뒤에도 같은 판단을 유지하는가. 검찰이 다른 결정을 내릴 경우 이를 그대로 존중할 것인가. 대통령과 여권의 정치적 이해보다 형사사법 절차를 앞세울 수 있는가.
김 후보자가 답해야 할 대목도 여기에 있다. 공소취소가 법적으로 가능하냐는 논쟁만으로는 부족하다. 장관으로 취임한 뒤 대통령 사건과 관련해 어떤 원칙을 적용할지, 이해충돌 우려가 생길 경우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절제할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법치주의는 법 조문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과정이 공정하다는 믿음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검찰이 대통령 사건의 공소를 유지하든 취소하든 국민이 그 결정을 정치적 압력의 결과로 받아들이면 형사사법의 신뢰는 흔들린다. 장관이 실제로 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과거의 정치적 발언이 결정 과정 전체에 의심을 덧씌울 수 있다.
그래서 권력기관의 장에게는 법에 적힌 권한보다 더 넓은 자기 절제가 요구된다. 로마 공화정 시기 법과 권력의 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원칙 가운데 하나가 ‘법은 사람보다 오래가야 한다’는 사고다. 통치자의 이해에 따라 법이 흔들리는 순간 공화정의 토대도 함께 흔들린다고 봤다. 오늘날 법무부 장관에게 요구되는 원칙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과 정치권의 사정이 바뀌어도 형사사법의 기준은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
장관은 대통령의 참모이면서 동시에 법치의 관리자다. 두 역할이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앞세우느냐가 중요하다.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 법무행정의 목표로 읽히는 순간 장관의 독립성은 약해진다. 반대로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이라도 법과 절차 앞에서는 거리를 둘 수 있다면 신뢰는 유지된다.
우리 정치에서 법무부 장관과 검찰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된 이유도 이 경계가 자주 흐려졌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 인사와 수사 방향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고, 여권은 검찰개혁을, 야권은 권력수사를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검찰과 법무부는 정치의 중심으로 끌려 들어갔다. 정치적 사건이 생길 때마다 장관의 말과 검찰의 판단이 정쟁의 소재로 소비되는 구조가 굳어진 셈이다.
이제는 이 악순환을 줄여야 한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과거 정치적 발언을 문제 삼는 데서 멈출 일도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취임 이후 대통령 사건을 비롯한 정치적 사건에서 어떤 원칙을 적용하느냐다. 구체적 사건에 대한 불필요한 발언을 자제하고 검찰의 법적 판단을 존중하며, 지휘권 행사 기준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태도가 관건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도 같은 기준에서 접근하는 편이 낫다. “공소취소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단답형 공방보다 대통령 사건에서 장관의 이해충돌을 어떻게 관리할지, 수사지휘권 행사의 기준은 무엇인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어떻게 보장할지를 묻는 편이 생산적이다.
김 후보자가 “지휘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것은 방향 자체로는 타당하다. 하지만 국민이 궁금한 것은 현재의 말보다 취임 이후의 행동이다.
의원 시절의 정치적 주장을 장관이 된 뒤에도 법과 원칙보다 앞세운다면 우려는 현실이 된다. 반대로 정치적 이해와 거리를 두고 형사사법 절차를 존중한다면 과거 발언과의 간극도 설명력을 얻는다.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이 아니다. 정권의 이해를 지키는 자리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형사사법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관리하는 것이 본래의 책무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봐야 할 것도 결국 그 점이다. 과거의 발언 자체보다 앞으로 어떤 기준을 지킬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대통령과의 정치적 거리를 스스로 확보하고, 법과 절차를 흔들지 않는 태도로 국민에게 답해야 한다.
법무부 장관에게 요구되는 신뢰는 강한 권한 행사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통령과 가까울수록 법 앞에서는 더 멀리 서는 절제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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