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한국 정부가 중국인 투자자가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최종 승소했다. 당초 약 2조원에 달했던 배상 청구액은 절차 진행 과정에서 2641억원가량으로 줄었지만 정부가 배상할 돈은 한 푼도 남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취소절차에 들어간 소송비용 약 15억원까지 돌려받게 됐다.
13일 법무부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가 한국시간으로 12일 오전 5시25분쯤 중국인 투자자 펑전 민씨가 제기한 중재판정 취소신청을 전부 기각했다고 밝혔다.
취소위원회는 민씨에게 한국 정부가 취소절차에서 지출한 소송비용 약 15억1283만원과 이에 대한 이자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번 사건은 민씨가 중국 베이징의 화푸빌딩 매입·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내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은 대출을 둘러싸고 시작됐다.
민씨는 2007년 10월 국내에 파이코리아를 설립하고 우리은행이 주선하고 지급보증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통해 3800억원을 조달했다.
하지만 파이코리아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대출채권을 인수한 우리은행은 담보로 확보한 회사 주식을 매각했다. 민씨는 이에 반발해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2017년 7월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민씨는 대출 과정에서 우리은행 임직원에게 금품이나 이익을 약속하거나 제공한 혐의 등으로 수사와 재판도 받았다. 이와 관련한 유죄 판결은 2017년 3월 확정됐다.
이후 민씨는 우리은행의 주식 매각과 한국의 민·형사 사법절차가 한·중 투자협정을 위반했다며 2020년 8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를 제기했다.
당초 민씨가 요구한 배상액은 약 2조원에 달했다. 하지만 중재 절차가 진행되면서 최종 청구액은 약 2641억원으로 줄었다.
그러나 원 중재판정부는 민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4년 5월 중재판정부는 민씨의 회사 설립과 주식 취득이 금융기관 임직원에게 금품을 제공해 대출을 조달하려는 불법적인 계획의 일부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민씨의 투자는 한·중 투자협정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는 투자가 아니며 중재판정부가 이 사건을 판단할 관할권도 없다고 봤다. 결국 민씨의 청구는 전부 기각됐다.
원 중재판정부는 이와 함께 민씨에게 한국 정부의 소송비용 약 49억1260만원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민씨는 이에 불복했다. 같은 해 9월 중재판정 취소를 신청하면서 중재판정부가 투자협정과 국내법을 잘못 해석했고 자신에게 충분한 변론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판정 이유에도 누락과 모순이 있다는 것이 민씨 측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번 취소위원회 역시 민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취소위원회는 원 중재판정부의 투자협정 해석이 합리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민씨에게 충분한 변론 기회가 주어졌고 원 판정의 이유 역시 명확하게 제시됐다고 봤다.
ISDS의 취소절차는 일반적인 항소심과 성격이 다르다. 사실관계나 법률 판단을 처음부터 다시 심리하는 절차가 아니다. 중재판정부가 명백하게 권한을 벗어났거나 중대한 절차적 문제가 발생하는 등 제한적인 사유가 인정될 경우에만 판정을 취소할 수 있다.
이번 결정으로 한국 정부는 약 2641억원에 달하는 배상 부담에서 최종적으로 벗어나게 됐다. 여기에 취소절차에 투입된 소송비용 약 15억원과 이자까지 돌려받게 됐다.
법무부는 이번 결정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이뤄진 투자는 국제투자협정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한 것으로 평가했다.
법무부는 “이번 결정으로 국내법상 위법한 투자는 ISDS에서 보호받지 못한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했다”며 “소송비용 환수에 최선을 다하고 청구인 측과 협의해 취소결정문 등을 최대한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최근 주요 국제투자분쟁 취소절차에서도 잇따라 승소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제기한 ISDS에서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중재판정 일부가 취소됐다. 이에 따라 당시 기준 원금과 이자를 합쳐 약 4000억원에 달했던 배상 의무가 사라졌다.
올해 2월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엘리엇 사건에서도 한국 정부가 영국 법원에서 승소했다. 영국 법원은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기존 중재판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약 1600억원 규모의 배상 의무도 잠정적으로 소멸했다.
중국인 투자자 펑전 민씨 사건까지 정부가 잇따라 ISDS 취소절차에서 승소하면서 국제투자분쟁에 따른 국가의 배상 부담도 상당 부분 줄어들게 됐다. 정부는 앞으로도 ISDS 사건에서 국가의 정당한 규제 권한과 사법 절차가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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