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운의 강철부대] 대기업이 스타트업 된다… LG전자, 대기업 특유 '느린 조직' 한계 깨고 '신사업 우회 전략' 카드
정보운 기자2026-05-03 07:00:00
AI·로봇 등 B2B 신사업, 내부 대신 시장에서 검증'분사→검증→협력' 우회형 사업 모델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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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마곡 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전자 사내벤처 프로그램 '스튜디오341' 데모데이에서 최종 선발된 사내벤처 '머신플로우' 김봉상 대표가 회사를 소개하는 모습 [사진=LG전자]
[경제일보] 대기업이 스타트업 방식으로 신사업을 추진하는 구조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LG전자가 사내벤처를 외부로 분사시키는 전략은 대기업 특유의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로 인한 '느린 조직'의 한계를 우회해 시장 검증 속도를 높이려는 실험으로 해석된다.
3일 LG전자에 따르면, LG전자는 최근 사내벤처 프로그램 '스튜디오341'을 통해 육성한 팀들을 잇달아 독립 법인으로 분사시키며 신사업 추진 방식을 재편하고 있다. 단순히 내부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수준을 넘어 외부 시장에서 기술과 사업성을 동시에 검증하는 구조를 택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기존 대기업의 신사업 공식과는 결이 다르다. 과거에는 내부 연구개발(R&D)을 통해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제품화해 시장에 내놓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로봇, 첨단 소재 등 최근 부상하는 산업은 초기 시장이 불확실하고 사업 방향 전환이 빈번해 대기업 조직만으로는 대응 속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특히 신사업은 개발과 검증, 방향 전환을 신속하게 반복하는 과정이 핵심으로 시장 수요가 불확실한 초기 단계일수록 짧은 주기로 성과를 점검하고 사업 모델을 수정하는 유연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대기업은 다층적인 보고 체계와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이러한 반복 속도를 확보하기 어렵고 실패에 따른 내부 책임 부담도 커 과감한 시도를 지속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 기존 주력 사업과의 이해관계 충돌, 자원 배분 우선순위 문제까지 맞물리면서 신사업 추진 속도가 구조적으로 제약받는 환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LG전자가 선택한 해법은 '조직 밖으로의 이동'이다. 사내에서 일정 수준 검증을 거친 아이디어를 별도 법인으로 분사할 경우 해당 조직은 기존 대기업 체계에서 벗어나 스타트업과 유사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게 된다.
이에 따라 투자 유치 과정에서 외부 자본과 직접 접점을 만들고 고객 확보 역시 기업 브랜드가 아닌 사업 자체의 경쟁력으로 검증받는 환경이 조성된다. 사업 모델 수정과 전략 변경도 내부 승인 절차에 얽매이지 않고 시장 반응에 맞춰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어 결과적으로 제품·기술 개발과 사업화 전반의 실행 속도가 크게 개선되는 구조다.
기업 입장에서도 효율적이다. 신사업 리스크를 내부에 모두 안고 가지 않으면서도 핵심 인력과 기술은 협력 관계를 통해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할 경우 전략적 투자나 사업 협업을 통해 성과를 흡수하는 것도 가능하다. 직접 수행과 외부 협력을 병행하는 우회형 신사업 모델이 구축되는 셈이다.
이번에 분사된 팀들이 △AI 솔루션 △코드 품질 개선 에이전트 △주방 자동화 로봇 △난연 소재 설계 등 모두 B2B 영역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소비자 대상 완성품 사업보다 기업 고객을 상대로 기술을 검증해야 하는 분야일수록 속도와 유연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LG전자의 사업 구조가 가전 중심 B2C에서 산업 기술 중심 B2B로 점진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해석된다.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에서 기술과 솔루션을 공급하는 방향으로의 전환 가능성이 동시에 제기된다는 분석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전략은 산업 전반의 경쟁 방식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최근에는 단일 기업이 모든 기술을 확보하기보다 각 분야 전문 기업 간 협력으로 경쟁하는 구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AI가 로봇과 자동화 설비 등 물리적 시스템과 결합하는 피지컬 AI 흐름이 본격화되면서 기술 간 결합 속도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처럼 모든 기술을 내부에 쌓기보다 외부 생태계를 활용해 필요한 기술을 빠르게 확보하고 연결하는 방식이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내벤처 분사 역시 이러한 개방형 혁신 전략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실제 LG전자는 분사 이후에도 해당 스타트업과 협력 관계를 이어가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창업 지원을 넘어 장기적으로 기술 파트너를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내부 조직과 외부 스타트업이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연계되는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미 초기 분사된 스타트업들이 정부 지원 사업과 기술 평가에서 성과를 내며 일정 수준의 사업성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는 사내벤처 모델이 단순 실험이 아니라 실제 성장 가능성을 갖춘 구조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결국 LG전자의 사내벤처 분사는 조직 혁신을 넘어 대기업의 신사업 추진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내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접근에서 벗어나 시장에 먼저 던져보고 검증된 기술을 중심으로 협력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강철부대의 시선이 머무는 곳, 대기업의 신사업 경쟁은 더 이상 내부 조직 혁신에 머물지 않는다. 시장으로 무대를 옮긴 속도 경쟁이 판을 다시 짜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빠른 검증과 방향 전환이 가능한 구조가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는 흐름이다.
기업 내부에서 완결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외부 생태계를 활용한 실험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대기업이 직접 스타트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스타트업처럼 움직이기 위한 구조적 전환이 이미 시작됐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