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주요 투자은행(IB)들이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본격적인 시작을 전망하며, 한국 반도체 대장주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일제히 대폭 상향 조정한 시장 상황을 시각화한 인포그래픽. [제작=Gemini]
[경제일보] 18일 코스피 지수가 장중 사상 처음으로 9000선을 돌파하는 새 역사를 썼다.
최근 미국과 이란이 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동안 시장을 짓누르던 지정학적 위기가 해소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국내 증시를 이끌어온 반도체 대장주들의 거침없는 질주가 폭등에 불을 붙였다. 인공지능(AI) 수요 폭발을 등에 업은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일제히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목표주가를 대폭 높여 잡고 있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지난달 20일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이들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기존 4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과감하게 상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 다른 글로벌 IB들도 앞다투어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며 눈높이를 올리는 상황이다.
글로벌 IB 3곳이 제시한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취합하면 하단 300만원, 상단 500만원으로 평균 383만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IB별로 살펴보면 JP모건이 300만원을 제시했으며 골드만삭스는 이보다 높은 350만원을 내놓았다. 노무라증권은 가장 높은 500만원을 예측했다.
삼성전자 역시 목표주가 눈높이가 크게 높아졌다. 삼성전자 목표주가는 하단 48만원, 상단 59만원으로 평균 51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JP모건과 골드만삭스가 나란히 48만원을 적정 주가로 제시했다. 노무라증권은 59만원을 목표가로 잡으며 가장 공격적인 베팅에 나섰다.
각 증권사별로 구체적인 목표가 수치에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산정한 근거와 향후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동소이하다.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AI 관련 수요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이 이끄는 메모리 수요는 향후 5년 동안 1만배에서 2만배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한때 제기됐던 글로벌 클라우드 공급자들의 설비투자 축소 우려의 목소리는 다소 사그라든 모습이다. 세 곳 모두 이구동성으로 인공지능 수요의 구조적 팽창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공통된 낙관론의 배경에는 기업들의 강력한 실적 펀더멘털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AI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전반적인 제품 공급난이 심화하는 추세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은 직전 분기보다 60%가량 폭등할 것으로 관측된다. 반도체 제조사들이 수익성이 높은 AI 서버용 메모리로 생산 능력을 돌리면서 일반 범용 제품 품귀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 수직 상승으로 이어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매 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울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은 지난해 대비 5배 수준인 259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골드만삭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회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오는 2028년 100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파격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단일 업종에서 두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으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엄청난 규모다. 골드만삭스는 삼성전자의 오는 2028년 영업이익을 610조원, SK하이닉스를 454조원으로 각각 제시했다.
장기공급계약 구조의 정착도 반도체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을 높이는 핵심 요인이다. 과거 메모리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미세한 변화에도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구조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형 고객사들이 안정적인 물량 확보를 위해 3년에서 5년 단위의 장기 계약을 맺고 있다. 선수금과 물량 미인수 페널티 조항이 강화되면서 공급자가 떠안던 재고 부담이 크게 줄었다. 기업들의 실적 변동성이 눈에 띄게 낮아진 것이다.
HBM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술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는 6세대 제품인 HBM4 시장에서 절반이 넘는 54%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플랫폼인 '베라 루빈'에 들어갈 초도 물량의 약 70%를 이미 배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수율 전략을 바탕으로 마진을 극대화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HBM4 시장 점유율 28%를 기록 중인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공정을 결합한 '턴키 전략'을 앞세워 맹추격 중이다. 엔비디아 물량의 30% 이상을 확보하기 위한 막바지 협상을 진행하며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주목할 점은 증시를 이끌어갈 주도주가 반도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AI 데이터센터 구축이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면서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방산과 자동차 업종 역시 향후 증시 상승 랠리를 이끌 핵심 섹터로 부각되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국내 증시를 이끌어갈 최선호주로 여러 종목을 꼽았다. 이들이 제시한 핵심 주도주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로템 △기아 △삼성SDI 등이다.
물론 낙관적인 전망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월가 주요 IB들은 올해 들어 한국 AI 반도체 주가가 단기간에 과도하게 올랐다고 판단하며 본격적인 위험 관리에 들어갔다.
JP모건과 골드만삭스 등은 해외 헤지펀드가 파생상품을 활용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투자할 때 적용하는 조달 금리를 대폭 인상했다. 헤지펀드는 소수 고액 자산가와 기관 투자자의 자금을 비공개로 모아 절대 고수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다. 최대 연 15%에 달하는 금융 비용 증가는 이들의 공격적인 레버리지 투자를 억제하는 효과를 낸다. 사상 최대인 750억달러 규모의 스페이스X 기업공개(IPO)가 대규모 시장 자금을 흡수하며 유동성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매파적 기조와 고환율 장기화 등 거시 경제 변수들도 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완제품 원가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전방 산업의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계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글로벌 IB들이 제시한 기록적인 목표주가 밴드는 AI 메모리 수요의 구조적 팽창에 대한 단단한 믿음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폭증하는 수요를 각 기업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수익으로 연결하느냐가 최종적인 승부를 가를 전망이다. 일시적인 조정 국면이 찾아오더라도 기업들의 튼튼한 이익 체력이 주가 하락을 방어할 완충 장치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
정창원 노무라 아시아리서치 공동대표는 "올해 메모리 반도체의 월별 매출액 추이를 보면 과거에는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수직 상승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경제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