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李 때는 9일 속도전, 金은 선고 전날 전합…'예외 재판' 반복한 조희대, 이제 거취 답해야

한석진 기자 2026-07-24 16:36:43
조희대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대법원이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통일교 금품수수, 명태균 여론조사 무상수수 혐의 사건을 선고 하루 전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대법원 2부가 두 차례나 선고 날짜를 잡았던 사건이다.
 

첫 선고를 미룬 데 이어 두 번째 선고를 하루 앞두고 재판의 틀까지 바꿨다. 대법원은 23일 “전원합의체 회부를 위해 선고기일을 변경·추정했다”고 밝혔다. 새 선고 날짜는 잡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진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소부가 선고기일을 정했다는 것은 적어도 사건 심리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뜻이다. 그런 사건을 선고 하루 전에 전원합의체로 돌린 이유를 대법원은 설명하지 않았다.
 

조희대 대법원 체제에서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을 둘러싼 이례적 재판 진행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불과 1년여 전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에서는 지금과 정반대 방향으로 대법원의 시간이 흘렀다.
 

◆ 李 사건은 배당 당일 전합…조희대가 직접 회부
 

이 대통령 사건은 2025년 4월 22일 대법원 2부에 배당됐다. 조 대법원장은 같은 날 대법관들의 의견을 들은 뒤 사건을 직접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도록 지정했다. 통상 주심 대법관의 의견에 따라 전원합의체 회부가 검토되는 것과 달리 대법원장이 직접 나선 것이다.
 

전원합의체는 그날 오후 곧바로 첫 합의를 열었다. 이틀 뒤 다시 대법관들이 모였다. 4월 29일 선고기일을 알렸고 5월 1일 이 대통령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법 판결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돌려보냈다. 전원합의체 회부에서 선고까지 9일이었다.
 

당시는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대법원이 유력 대선 후보의 형사사건을 전에 보기 어려운 속도로 처리하면서 사법부가 정치 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거셌다. 대법원 내부에서도 속도에 대한 이견이 나왔다.

 

반대의견을 낸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재판에서 충분한 설득과 숙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속한 재판도 중요하지만 속도 때문에 재판의 충실성이 훼손되면 사법 신뢰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취지였다.
 

대법관 사이에서는 허위사실공표죄에 관한 기존 판례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놓고도 의견이 갈렸다. 정치인의 발언은 일부 표현만 떼어 볼 것이 아니라 전체 맥락과 일반 선거인이 받아들이는 의미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기존 판례의 적용 문제가 쟁점이었다.
 

그런 논란에도 조 대법원장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재명 사건은 조희대 대법원이 선택한 재판 방식이었다. 소부 배당 당일 대법원장이 직접 전원합의체로 가져가 당일부터 합의를 시작했고 9일 만에 결론을 냈다.
 

◆ ‘숙고 부족’ 비판 받고도 1년 만에 또 이례적 절차
 

당시 논란은 판결 내용에 그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시기에 최고법원이 왜 그토록 서둘렀는지, 통상적인 전원합의체 운영과 다른 속도를 택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놓고 사법부 안팎에서 비판이 이어졌다. 조 대법원장에게는 뼈아픈 경험이었어야 했다.
 

대법원이 정치적 대형 사건을 처리할 때에는 판결 결과 못지않게 절차가 중요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판결이 법리적으로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재판 과정에서 정치적 의심을 자초하면 법원의 권위까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겪고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이번 김건희 사건에서는 정반대 형태의 예외가 나왔다. 대법원 2부는 당초 16일 선고를 잡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명태균 여론조사 사건 1심 판결이 나온 뒤 김건희 특검팀이 판결문 검토를 요청하자 24일로 선고를 한 차례 미뤘다. 8일을 더 확보한 셈이다.
 

그런데 두 번째 선고를 불과 하루 앞두고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새 선고기일도 정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시간이 없다는 듯 밀어붙였다. 이번에는 선고 직전까지 간 사건을 다시 돌렸다.
 

방향은 정반대지만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통상적인 재판 진행에서 벗어난 선택이라는 점이다.
 

◆ 정치적 사건마다 왜 ‘예외’인가


대법원은 법 적용의 마지막 기준을 세우는 곳이다. 하급심에서 판단이 엇갈리면 이를 정리하고 국민에게 어떤 법리가 적용되는지 보여주는 곳도 대법원이다.
 

그런 대법원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마다 이례적인 재판 절차를 반복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 대통령 사건에서는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소부 배당 당일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김건희 사건에서는 소부가 두 차례 선고 날짜를 잡고도 마지막 순간에 전원합의체로 돌아갔다.
 

국민의 눈에는 한쪽에서는 지나치게 빠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늦게 방향을 바꾼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사건에서 직접 선택한 절차는 이미 사법부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대법원의 재판이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란이 벌어졌고 최고법원의 정치적 중립성까지 도마에 올랐다.
 

그런 논란을 겪은 뒤라면 적어도 같은 종류의 의심을 다시 불러올 재판 운영은 피했어야 했다. 그런데 김건희 사건에서 다시 ‘이례적’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한 번의 예외는 판단일 수 있다. 예외가 반복되면 운영 방식이 된다. 조희대 대법원이 지금 직면한 문제도 여기에 있다.
 

◆ 사법부 신뢰 흔들어 놓고 대법원장 자리만 지킬 수 있나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정치권이 재판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내세웠다. 그 원칙이 힘을 가지려면 법원부터 정치적 의심을 살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특히 대법원장은 일반 재판장이 아니다. 대법원을 대표하고 사법행정을 총괄하며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맡는다.
 

이 대통령 사건은 조 대법원장이 직접 전원합의체 회부를 지정했다는 사실까지 확인돼 있다. 김건희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 과정에서 조 대법원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은 이제 조 대법원장이 재판장인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진다. 대법원 운영 전반에 대한 책임도 조 대법원장에게 있다.
 

이 대통령 사건에서 초고속 재판으로 논란을 일으킨 뒤 김건희 사건에서는 선고 하루 전 전원합의체 회부라는 또 다른 예외를 만들었다면 사법부 수장은 그 반복에 책임을 져야 한다.
 

사법부 수장의 책임은 판결문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재판이 누구에게나 같은 원칙과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대법원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그 믿음을 흔드는 일이 반복되는데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를 지키는 것은 책임지는 자세와 거리가 멀다.
 

지난해 이 대통령 사건에서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남아 있다. 이번에는 왜 두 차례 선고일을 잡은 사건을 하루 전에 다시 돌려세웠는지 의문이 더해졌다.
 

조 대법원장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마다 전에 보기 어려운 절차를 택하면서도 그 기준을 국민에게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대법원장직을 계속 수행할 명분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 자리는 법원의 권위를 등에 업고 버티는 자리가 아니다. 판결의 권위를 지키는 자리다.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재판 절차를 둘러싼 의심과 불신을 반복해서 키우고 있다면 책임은 말로 끝낼 일이 아니다.
 

이 대통령 사건에서 한 번 흔들린 사법 신뢰가 김건희 사건을 거치며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두 번의 이례적인 재판 진행 한가운데 조희대 대법원이 있다. 

같은 논란이 반복되고도 재판 운영의 기준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제 조 대법원장이 책임질 차례다. 그 책임은 거취에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