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동유럽과 북유럽을 중심으로 영토를 넓혀온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가 서유럽에 처음 진입했다. 이번 스페인 사업은 국내에서 생산한 완성품을 공급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현지 업체가 K9 플랫폼을 기반으로 자국형 자주포를 개발·생산하는 구조다. 유럽 방산시장에서 현지 생산과 기술주권 요구가 강해지면서 K9의 수출 전략도 ‘제품 판매’에서 ‘플랫폼·기술 협력’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날 스페인 방산기업 인드라 시스테마스와 K9 자주포 등의 수출 실행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금액과 물량, 기간 등은 상대방의 비밀유지 요청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앞선 기본계약 공시를 기준으로 계약 규모는 66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계약은 지난 3월 양사가 체결한 구속력 있는 양해각서(MOU)가 실제 사업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7월 최근 매출액의 2.5% 이상에 해당하는 상품 공급 기본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지만 계약 상대방과 사업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실행계약을 통해 당시 계약이 스페인 K9 사업과 관련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스페인 육군은 노후 포병 전력을 교체하기 위한 대규모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인드라가 협력하는 분야는 궤도형 자주포 체계다. 인드라가 지난 3월 공개한 계획에 따르면 K9 계열 플랫폼을 기반으로 궤도형 자주포 128문과 탄약보급차량 120대, 지휘통제차량 11대, 구난차량 21대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사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국내에서 생산한 K9 완성품을 그대로 공급하는 기존 수출 방식과 차이가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9 플랫폼과 관련 기술을 제공하면 인드라가 스페인 육군 요구에 맞춰 현지형 무기체계를 개발·생산한다.
인드라는 스페인에서 차량 차체를 생산하고 미션시스템과 360도 상황인식 체계, 전장관리체계(BMS), 통신시스템 등을 탑재할 예정이다. K9 플랫폼을 기반으로 스페인형 차체를 개발하고 이에 대한 설계 권한도 확보한다. 이를 위해 히혼 공장 등에 1억3000만 유로를 투자하고 직접고용 500명과 간접·유발고용 1000명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사업 방식은 유럽 방산시장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이 국방비 확대와 함께 역내 방산 공급망 구축을 강조하면서 가격과 납기뿐 아니라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 현지 업체 참여가 수주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EU의 방위산업 지원책 SAFE도 공동조달 제품의 부품 비용 가운데 EU와 우크라이나, 유럽경제지역(EEA)·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밖에서 발생하는 비중을 35%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계약으로 K9의 유럽 시장도 한 단계 넓혔다. 2001년 튀르키예를 시작으로 폴란드와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루마니아 등 동·북유럽을 중심으로 구축했던 시장이 스페인까지 확대됐다. 단순히 수출국을 추가하는 것을 넘어 현지 업체의 설계·생산 참여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유럽 시장 공략 모델도 다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증권가에서는 스페인 진출을 계기로 K9의 추가 수주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 폴란드 등에서 후속 사업이 거론되는 가운데 서재호 DB증권 연구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대해 “공략할 수 있는 전체 시장(TAM) 확대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K-방산 베스트셀러에 기반한 기존 대형 수주 파이프라인도 꾸준한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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