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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국회의원의 전화 한 통, 민원인가 압력인가

송정훈 기자 2026-09-03 09:41:18
식약처장에 '빠른 처리' 요청 논란…정치권 민원과 부당한 영향력 행사 경계 분명히 해야
[사진=AI 생성 이미지]

[경제일보] 국회의원에게 민원은 일상이다. 지역 주민의 억울한 사정을 듣고 행정기관에 전달하고, 기업의 규제 애로를 정부에 설명하는 것도 의원의 역할이다. 문제는 어떤 사안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느냐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의원 시절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을 추진하던 업체와 관련해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보도된 문자에는 식약처 내 담당 부서가 언급됐고, “담당 실무자들이 좀 빠르게 처리할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는 취지의 내용도 포함됐다. 김 후보자는 민원을 전달했을 뿐 부정한 로비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관련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김 후보자가 업체 측으로부터 직접 뇌물을 받은 것은 아니라며 2024년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법원 판결문에도 해당 행위를 곧바로 부정한 청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단이 담겼다. 현 단계에서 위법성을 단정할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법적 처벌 여부와 공직자로서 적절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핵심은 국회의원의 민원 전달이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느 지점부터 권력의 압력으로 작동하느냐다.
 
의약품 임상시험은 일반 민원과 다르다. 국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고 전문적인 과학 판단이 요구된다. 승인 여부와 자료 보완은 정치권이 아니라 규제기관과 전문가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결정할 사안이다.
 
국회의원이 식약처장에게 직접 ‘빨리 처리해달라’고 요청하면 무게가 달라진다. 의원은 정부를 국정감사하고 예산을 심사하며 법률을 만드는 권한을 가진다. 형식은 민원 전달이라 해도 행정기관에는 압박으로 읽힐 여지가 크다.
 
‘승인해달라’와 ‘빨리 검토해달라’는 표현도 다르지만 처리 속도 자체가 행정 판단의 일부다. 특정 사건을 먼저 챙기게 하는 순간 공정성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물론 신속한 행정은 필요하다. 규제 때문에 기술개발과 사업화가 지연되는 문제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특정 의원의 전화로 속도를 높일 것이 아니라 모든 기업에 동일한 기준과 처리 시한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 그것이 규제 혁신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관행이 기업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는 점이다. 정상 절차와 기술력보다 정치권과의 연결이 문제 해결에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기업은 연구개발보다 인맥과 로비에 비용을 쓰게 된다. 정치권 주변에는 내가 의원과 장관을 안다는 브로커가 몰려든다.
 
대관과 로비 논란이 반복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기업은 정부기관에 직접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정치인이나 전직 관료를 찾는다. 이들이 고위공직자에게 연락하면 해당 민원을 다른 민원과 똑같이 취급하기 어려워진다. 정치와 행정 사이의 회색지대가 그렇게 생긴다.
 
현행 청탁금지법과 이해충돌방지법만으로 이 문제를 모두 가려내기도 어렵다. 금품이 오가지 않고 노골적으로 허가를 요구하지 않았다면 부정청탁 여부가 쉽게 갈리지 않는다.
 
그래서 접촉의 투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이 특정 기업이나 개인의 인허가·제재 관련 민원을 전달할 경우 접촉 사실과 주요 내용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의약품 허가, 금융 인허가, 공정거래 조사, 세무조사, 수사처럼 독립적 판단이 중요한 분야에는 더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
 
국회의원에게도 선은 분명해야 한다. 민원을 전달한다면 ‘규정과 절차에 따라 검토해달라’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적절하다. 특정 기한이나 담당자를 찍어 속도를 요구하면 행정기관에는 다른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사건에서 정치후원금 제공 시도와 주변 인물들의 금전 관계를 둘러싼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확인된 사실과 정치권 주장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김 후보자가 업체로부터 직접 뇌물을 받았다고 단정할 근거는 현재 확인된 내용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문에 이번 논란을 개인의 유무죄 공방으로만 끝내서는 곤란하다. 같은 구조가 남아 있으면 또 다른 의원과 기업, 정부기관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논어>에는 군자는 말에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가르침이 반복된다. 권력자의 말은 명령이 아니어도 주변의 행동을 바꾼다. 오늘날 국회의원의 문자 한 통, 기관장에게 건 전화 한 통도 다르지 않다.
 
공직자의 영향력은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한번 봐달라’는 말이 실무자에게는 ‘반드시 챙겨라’는 지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무게를 먼저 계산해야 한다.
 
정치인이 기업의 어려움을 듣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과 기업의 목소리를 행정부에 전달하는 것은 국회의 기능이다. 다만 그 과정이 특정인의 절차를 앞당기는 통로로 변질되는 순간 민원은 특혜 논란으로 바뀐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정치권과 행정기관 사이의 접촉을 더 투명하게 만들고 전문 규제기관이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전화 한 통은 가볍지 않다. 그 무게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평범한 국민의 민원은 뒤로 밀리고 행정의 공정성도 흔들린다. 권력에 가장 먼저 필요한 덕목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영향력을 절제하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