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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이란 전쟁 심층분석 ⑦] 울산에서 만든 배, 이란의 '항공모함'이 되다

한석진 기자 2026-03-18 10:44:05

울산에서 만든 배, 이란의 '항공모함'이 되다

이란 테헤란 시내에 미국 항공모함 공격을 묘사한 벽화가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지난 2일 미 중부사령부는 이란 측 주장을 반박하는 짧은 글을 내놓았다. 미국 항공모함이 격침됐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신 미군이 타격한 것은 이란이 운용하던 드론 항모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전쟁 초기의 혼선 속에서 나온 이 한 문장은 다른 사실 하나를 끌어올렸다. 이란이 해상 전력의 상징처럼 내세운 그 함정이, 과거 한국 울산에서 건조된 민간 컨테이너선이었다는 점이다. 전장은 무기의 성능을 드러내는 곳이지만, 그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그 무기가 만들어진 조건이다.
 

샤히드 바게리호의 전신은 2000년 한국에서 건조된 컨테이너선 ‘페라린’이다. 길이 약 240m 규모의 중형 상선으로, 화물 운송을 전제로 설계된 선박이었다. 전투 상황을 고려한 방어 체계나 생존성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포함되지 않는다. 이 선박은 이후 개조 과정을 거쳐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 소속 함정으로 편입됐다. 새로운 군함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 상선의 용도가 완전히 뒤집힌 경우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이다. 무엇이 만들어졌는가보다 왜 이런 방식이 선택됐는가가 이 함정을 이해하는 핵심에 가깝다.
 

이 함정은 항공모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전통적인 항모와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미국 항공모함은 전투기 운용을 중심으로 한 해상 공군 기지로, 항공기와 방어 체계, 호위 전력이 결합된 복합 전력이다. 반면 샤히드 바게리호는 상선 위에 비행 갑판을 덧붙이고 드론과 헬기를 운용하는 형태다. 활주로 길이와 운용 능력 모두 제한적이며, 전투기를 지속적으로 운용하는 항모와는 역할과 범위에서 차이가 있다. 군사적으로는 항공모함이라기보다 해상 드론 운용 기지에 가까운 성격을 가진다. 이란이 붙인 이름과 실제 전력 사이에는 일정한 간극이 존재한다.

 

이 같은 방식은 이란이 처한 환경과 맞닿아 있다. 항공모함은 단순한 선박이 아니라 항공기 운용 체계와 전자전 능력, 방어 시스템이 결합된 고난도 전력이다. 이를 구축하려면 장기간의 기술 축적과 산업 기반이 필요하다. 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그 과정 자체가 쉽지 않다. 이란이 선택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전력의 건조가 아니라, 이미 보유한 자산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컨테이너선은 넓은 갑판과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어 개조가 가능하다. 선체와 기관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점도 작용한다. 제한된 조건 속에서 선택된 우회 전략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전장은 선택의 배경이 아니라 결과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샤히드 바게리호는 개전 초기 타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크고 속도가 느린 선박은 정밀 타격 환경에서 쉽게 노출된다. 상선을 기반으로 한 개조 함정은 구조적으로 방어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군함처럼 피격 상황을 전제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운용 가능한 전력’과 ‘전장에서 버틸 수 있는 전력’ 사이의 차이가 드러난다. 상선을 군함으로 바꾸는 시도는 가능했지만, 그 결과가 동일한 수준의 생존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 함정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성능 평가로만 정리되지 않는다. 이란은 이 함정을 통해 해상에서 드론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려 했다. 이는 원거리 작전 능력과 해군력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와 맞닿아 있다. 해군력은 전투 능력뿐 아니라 국가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샤히드 바게리호는 완성된 항모라기보다 그러한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 사건은 한국과도 의외의 접점을 만든다. 해당 선박은 한국에서 건조됐지만 군함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다. 민간 상선이 다른 경로를 거쳐 군용으로 전환됐다. 동시에 중동 지역에서는 한국산 방공 체계가 운용되는 장면도 포착된다.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형성된 산업 결과물이 전장에서 맞닿는 모습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전쟁과 연결되는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샤히드 바게리호는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자원이 제한된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전력을 확보하는가, 그리고 그 전력이 실제 전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가에 관한 질문이다. 상선을 항공모함으로 바꾸는 선택은 기술적으로 가능했다. 다만 그 선택이 전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이 함정이 남긴 장면은 새로운 무기의 등장이라기보다, 전쟁이 만들어내는 방식의 변화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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