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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관의 시선] 트럼프의 '금빛 개선문', 미국은 무엇을 승리로 착각하는가

선재관 기자 2026-04-19 14:17:40
미국 미술위원회가 지난 10일(현지 시각) 공개한 워싱턴DC 건국 250주년 기념 개선문 조감도. [사진=AP 연합뉴스]

[경제일보] 워싱턴 한복판에 높이 76미터짜리 거대한 개선문이 들어선다. 링컨기념관을 압도하고 꼭대기엔 횃불을 든 조각상이, 아래엔 사자와 독수리가 도열한다. 

금빛 장식까지 두른 이 건축물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다. 로마 황제들이 전쟁을 끝내고 개선할 때 세우던 바로 그 ‘승리의 상징’을 21세기 미국의 심장부에 박아 넣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장면(scene)’의 정치학을 안다. 그는 복잡한 논리나 긴 정책 설명 대신 눈에 보이는 강력한 상징을 던진다. 그에게 정치는 설득이 아니라 시각의 점령이다. 사람들은 구호를 잊어도 이미지는 기억한다. 미국의 위대함을 돌과 금으로 빚어 워싱턴의 경관을 재배치하는 행위는 그가 자신의 통치를 ‘역사적 사건’으로 고착화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미국은 무엇에 대해 승리를 선언하려는 것인가. 개선문은 승자의 전리품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나라가 아니다. 

갈등의 화염에 휩싸여 내전(內戰)에 가까운 정치적 분열을 겪고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좌와 우는 다른 세계에 산다. 이 형국에 세우는 개선문은 통합의 상징이 될 수 없다. 누군가에겐 자부심의 깃발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자신들이 배제당했다는 낙인이 될 뿐이다.

트럼프의 개선문은 워싱턴이라는 도시의 ‘문법’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링컨기념관 앞에 서면 사람들은 고요해진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말 없는 침묵을 요구한다. 그곳은 사색과 성찰의 공간이다. 선언과 과시의 상징이 그 사이에 틈입하는 순간 워싱턴은 명상하는 도시에서 프로파간다의 도시로 전락한다.

그는 반대 목소리를 도리어 즐기는 듯하다. 논쟁이 격해질수록 지지층은 결집한다. 찬반이 팽팽할수록 그의 메시지는 선명해진다. 중도가 사라진 자리에 ‘우리’와 ‘그들’이라는 적대적 공생만 남는다. 개선문은 이 극단적 양극화의 정점에 꽂는 깃발이다. 그는 반대파의 비판을 “애국심의 결여” 혹은 “기득권의 저항”으로 몰아붙이며 자신의 입지를 더욱 견고히 한다.

건국 250주년을 앞둔 미국이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 돌덩이로 세운 기념비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목소리가 공존하는 민주주의의 복원인가. 트럼프의 금빛 개선문은 위대함의 상징이 아니라 시대의 오만함을 증명하는 거대한 ‘오브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나라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건물의 높이가 아니다. 그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다. 승리를 외치는 나라보다 더 강한 나라는, 패배의 기억조차 품을 수 있는 나라다. 트럼프가 세우려는 개선문은 그가 꿈꾸는 미국의 승전보일지 모르나 그 그림자 아래 미국은 더욱 작아지고 있다.

기억해야 한다. 세월이 흐르면 돌은 깎이고 금박은 벗겨진다. 그러나 사람들이 서로를 증오하며 남긴 상처는 돌보다 오래간다. 트럼프가 워싱턴에 세우려는 것은 개선문이 아니라 자신만의 성벽일지도 모른다. 미국은 지금 승리를 축하할 때가 아니라 무너진 공동체의 기초를 다시 쌓아야 할 때다. 돌덩이보다 사람의 마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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