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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사설] '1조 달러 삼성', 왕관의 무게와 두 개의 그림자

경제일보 2026-05-06 16:16:56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마침내 삼성전자가 시가총액 1조 달러라는 꿈의 성채에 깃발을 꽂았다. 이 숫자는 단순한 주가 상승의 기록이 아니다.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의 중심에 대한민국 기업이 서 있다는 장엄한 선언이자 과거의 굴레를 벗고 미래 산업의 심장부로 진입했음을 세상에 공표한 증표다. 

대만의 TSMC에 이어 아시아에서 단 두 번째로 열린 이 위대한 문은 삼성전자가 단순히 규모가 큰 제조기업을 넘어 AI 시대의 필수불가결한 ‘인프라 파트너’로 그 가치를 재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왜 지금 ‘1조 클럽’인가. 시장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AI 혁명의 스포트라이트는 엔비디아와 같은 설계 기업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이제 시장의 눈은 그 화려한 무대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기반, 즉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로 옮겨왔다. AI 연산의 병목을 해결할 유일한 열쇠가 바로 이 메모리에 있음을 시장이 비로소 인정한 것이다.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의 동반 급등이 그 전조였다면 삼성전자의 1조 달러 돌파는 메모리 반도체가 AI 시대의 새로운 ‘쌀’이자 ‘석유’임을 공인한 결정적 사건이다.

과거의 삼성전자가 범용 메모리를 공급하는 거대한 방앗간이었다면 지금의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AI 생태계의 핵심 축으로 진화했다. 이는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를 추월한 것이 단순한 시총 순위의 변동이 아니라 굴뚝 산업의 가치를 첨단 기술의 가치가 압도하는 시대정신의 변화임을 보여준다. 삼성의 이름 앞에 붙었던 ‘가치주’라는 꼬리표는 이제 ‘성장주’라는 날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눈부신 영광의 순간 우리는 왕관의 무게를 지탱해야 할 두 개의 무거운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하나는 외부의 기술 패권 경쟁이요, 다른 하나는 바로 우리 내부에서 곪아 터진 노사 갈등의 망령이다.

1조 달러 등극은 축포인 동시에 HBM을 둘러싼 메모리 주도권 전쟁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음을 의미한다. SK하이닉스와의 치열한 경쟁은 이제 국가적 자존심을 건 총력전으로 접어들었다. 한순간의 방심은 곧바로 추락으로 이어진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정부의 과감한 지원과 규제 혁파, 그리고 기업의 끊임없는 연구개발 투자가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않으면 1조 달러의 성취는 한순간의 신기루로 사라질 수 있다.

더욱 뼈아픈 것은 바로 우리 안의 그림자다. 회사가 사상 초유의 역사를 쓰는 바로 그 순간, 삼성전자 노조는 반도체 부문의 ‘성과급 잔치’에 매몰되어 스스로 분열하고 있다. 적자에 허덕이는 동료 사업부의 고통은 외면한 채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행태는 ‘연대’라는 노동운동의 가장 신성한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처사다.

회사가 AI의 혈관을 만드는 동안 노조는 그 혈관을 막아서는 혈전을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삼성의 엔지니어 한 명 한 명이 국가대표 선수처럼 뛰며 1나노의 벽을 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전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의 투쟁이 회사의 발목을 잡고 내부의 힘을 갉아먹는다면 이는 경쟁사의 총칼보다 더 무서운 자해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1조 달러의 가치는 반도체 공정의 기계가 아니라 그 안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의 머리와 손끝에서 나온다. 노조는 이 본질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투쟁은 회사를 상대로 한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서 함께 승리하여 그 과실을 어떻게 공정하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여야 한다. ‘나만 잘사는 투쟁’이 아니라 위기의 동료와 생태계를 이루는 협력업체까지 아우르는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성숙한 노동운동의 모습이다.

삼성전자 앞에 놓인 길은 명확하다. 기술적으로는 HBM을 포함한 차세대 메모리 시장의 초격차를 확고히 해야 한다. 경영적으로는 노조와의 낡은 대결 구도를 끝내고 성과의 온기가 회사 전체와 협력 생태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성숙한 상생의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1조 달러 기업의 위상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과 내부적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때다.

시가총액 1조 달러는 결승선이 아니다. 새로운 역사를 향한 출발선이다. 이 위대한 도약의 기회를 우리 내부의 갈등으로 발목 잡히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삼성은 이제 한 기업의 성공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그 자체가 되었다. 그 무거운 왕관의 무게를 감당하고 진정한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온 국민과 함께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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