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AI 반도체 시장 흔든 'EUV 병목'…ASML 완판이 드러낸 진짜 변수

정보운 기자 2026-04-16 15:02:01
HBM 경쟁에도 생산능력 제한 EUV 확보 여부가 시장 점유율 좌우
ASML 회사 로고 이미지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반도체 노광장비 독점 기업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완판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중심으로 전개되던 AI 반도체 경쟁의 병목이 성능이 아닌 생산 인프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 장비 확보 여부가 곧 시장 경쟁력을 좌우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16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ASML은 최근 1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 고객들의 생산능력이 2026년까지 이미 모두 판매된 상태(sold out)라고 밝혔다. 공급 제한은 오는 2027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함께 제시했다.

이는 그동안 성능 경쟁 중심으로 전개되던 AI 반도체 시장의 구조 변화 신호로 해석된다. 엔비디아와 AMD 등 빅테크 수요가 급증하며 HBM 확보 경쟁이 격화됐지만 실제 생산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는 EUV 장비 확보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EUV 장비는 사실상 ASML이 독점 공급하고 있다. 선단 공정에서 필수적인 장비인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업체들도 이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생산능력 확대 자체가 제한되는 구조다.

특히 ASML은 이번 분기 매출의 51%가 메모리 반도체에서 발생했고, 45%는 한국 고객사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전체 매출 약 15조원 가운데 7조원가량이 한국에서 발생한 셈으로 국내 메모리 업체들의 공격적인 설비 투자 기조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메모리 경쟁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에는 공정 미세화와 수율 개선을 통한 성능 경쟁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첨단 공정 전환의 전제 조건인 EUV 확보 여부가 경쟁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EUV 장비 없이는 선단 공정 진입 자체가 어려운 만큼 기술력 격차보다 장비 확보 시점과 물량이 실제 생산능력과 직결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HBM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EUV 확보가 지연될 경우 고객사 대응 속도와 납기 경쟁력에서도 차이가 벌어질 수 있어 장비 선점 여부가 곧 시장 점유율과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지난달 ASML로부터 약 12조원 규모의 EUV 장비를 주문하고 2027년까지 순차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단순한 설비 투자를 넘어 향후 AI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능력 선점 전략으로 해석된다.

결국 HBM 경쟁의 본질은 고성능 제품 구현 능력 중심에서 대규모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생산 역량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EUV를 둘러싼 장비 선점 경쟁이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승부처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