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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를 정상으로 되돌린다"…KAIST, 세포 운명 바꾸는 '잠금장치' 찾았다

선재관 기자 2026-08-21 13:52:52

조광현 교수팀, 세포 변화 고착시키는 '비가역성 커널' 규명…ROOT 제어기술 개발

암·노화 등 비정상 세포 제거 대신 정상 상태로 되돌리는 새로운 치료전략 가능성 제시

이번 연구를 수행한 KAIST 연구진. 이종훈(뒷줄 왼쪽부터), 장성훈 박사, 코빈 하퍼 박사과정, 조광현 교수.[사진=KAIST]

[경제일보] 국내 연구진이 한 번 암세포처럼 비정상적인 상태로 굳어진 세포를 다시 정상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새로운 원천기술을 제시했다. 세포가 특정 상태에 고착되는 원인을 단순히 개별 유전자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수천 개의 분자 네트워크 가운데 실제로 ‘잠금장치’ 역할을 하는 핵심 회로를 찾아 제어하는 방식이다.

KAIST는 바이오및뇌공학과 조광현 교수 연구팀이 세포 내 분자 네트워크에서 상태 변화를 되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핵심 회로를 규명하고 이를 제어하는 ‘ROOT’ 기술을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됐다.

◆ 수천개 회로 중 세포를 붙잡는 ‘잠금장치’ 찾아

세포는 외부 자극에 반응해 성질과 기능을 바꾼다. 문제는 자극이 사라진 뒤에도 변화된 상태가 유지되는 경우다. 이를 ‘비가역성(Irreversibility)’이라고 한다. 세포 분화처럼 정상적인 생명현상에 필수적인 반면 암세포의 이동성과 침윤성을 높이는 상피-간엽 전이(EMT) 등 질병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연구팀은 세포 내부의 ‘양성 되먹임 회로’에 주목했다. 특정 분자가 다른 분자를 활성화하고, 활성화된 분자가 다시 처음 분자를 활성화하는 구조가 형성되면 외부 자극이 사라져도 세포는 변화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회로가 세포 안에 수천개 이상 존재한다는 점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ROOT는 분자 간 상호작용을 컴퓨터 논리 모델로 구현한 뒤 외부 자극이 발생하고 사라지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해 세포를 특정 상태에 묶어두는 핵심 회로 집합인 ‘비가역성 커널’을 찾아낸다.

조광현 교수는 이를 복잡하게 얽힌 수천개의 전선 가운데 “실제로 문을 잠그고 있는 전선만 찾아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세포의 상태를 바꾸는 수많은 요인 가운데 결정적인 원인 회로를 특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 ‘리셋’과 ‘역전’으로 세포 상태 제어

연구팀은 찾아낸 핵심 회로를 바탕으로 두 가지 제어 전략도 제시했다. ‘리셋 제어(Resetting control)’는 세포의 비가역적인 특성 자체는 유지하면서 현재의 세포 상태를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반면 ‘역전 제어(Reversing control)’는 세포를 특정 상태에 고착시키는 비가역성의 원인 자체를 제거한다. 이를 통해 세포가 서로 다른 상태 사이를 다시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든다.

연구팀은 ROOT를 B세포 분화와 폐암의 상피-간엽 전이, 단일세포 전사체 데이터를 활용한 장세포·베타세포 분화 등 다양한 생물학적 모델에 적용했다. 기존 연구에서 세포 상태와 분화를 결정한다고 알려진 주요 인자와 일치하는 핵심 회로를 찾아냈으며 실제 실험 데이터 기반 분자 네트워크에서도 세포 상태를 되돌리는 제어 방법을 제시했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암 치료의 접근법을 한 단계 확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비정상 세포를 제거하거나 증식을 억제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면, 세포를 비정상 상태에 붙잡아두는 네트워크를 찾아 이를 해제함으로써 정상 상태로 되돌리는 전략이 가능해진다.

한편 이번 연구는 세포 운명을 제어할 수 있는 원천기술과 가능성을 제시한 단계로, 실제 암 환자 치료에 적용하려면 표적 회로의 안전성과 재현성, 정상세포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검증하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팀은 향후 암과 노화 등에서 비정상적으로 고착된 세포 상태를 제어하는 치료전략으로 기술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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