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잡곡이 왜 화장품 팔레트 안에 들어가 있지?"
지난 17일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쿠팡 온리 페스타'를 둘러보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행사장에서는 쿠팡 자체브랜드(PB) 상품들이 평소 온라인에서 보던 모습과 전혀 다른 형태로 연출돼 있었다. '곰곰'의 현미와 잡곡은 아이섀도처럼 칸칸이 나뉜 팔레트에 담겼고 벽지와 시트지는 두루마리 휴지나 마스크팩의 형상으로 재구성됐다.
하루 전 서촌에서도 비슷한 낯섦을 느꼈다. 이번에는 잡곡이 아니라 가방이다. 아카이브 앱크의 대표 상품 '플링백'은 매장 한가운데 작품처럼 놓여 있었고 주변을 감싼 반투명 패브릭이 바람에 흔들리며 가방 특유의 부드러운 촉감과 유연한 실루엣을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패션 브랜드와 이커머스 기업, 가방과 잡곡처럼 업종과 상품군은 달랐지만 두 현장을 연이어 취재하면서 공통된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아카이브 앱크와 쿠팡 모두 소비자에게 익숙한 상품을 기존 진열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적 연출로 풀어내고 있었다.
아카이브 앱크 컨셉스토어에서 주목할 점은 공간 자체의 화려함이 아니었다. 대표 상품 '플링'을 매개로 브랜드 정체성과 제품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제품의 기능을 설명하는 대신 공간 전체를 통해 플링이 가진 분위기와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방식이다.
이 같은 흐름은 패션 브랜드에만 머물지 않았다. 쿠팡도 '쿠팡 온리 페스타'에서 '곰곰', '탐사', '코멧' 등 평소 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PB 상품을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 온라인에서는 가격이나 용량, 별점과 후기 중심으로 비교되던 상품들이 오프라인에서는 시각적 연출을 통해 각기 다른 이미지와 특징을 드러냈다.
곡물은 색상과 형태를 강조한 시각적 연출 요소로 재구성됐고 제조사 배경과 상품 스토리도 별도 콘텐츠로 소개됐다. 가격과 실용성을 앞세우던 PB의 전형적인 판매 방식과 달리 현장에서는 제품 이미지와 서사를 함께 전달하려는 구성이 두드러졌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상품을 시각적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이 패션을 넘어 잡곡과 세제 같은 생활밀착형 상품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패션 산업은 오래전부터 기능과 품질만으로 경쟁력을 설명하기 어려운 산업으로 매장 구성, 시각적 연출, 브랜드 스토리 역시 제품 가치를 형성하는 주요 요소로 작용해왔다. 동일한 가방이라도 공간 구성과 브랜드 이미지에 따라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제품 가치와 브랜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 반면 PB 식품과 생활용품은 상대적으로 가격·품질·실용성이 구매를 좌우하는 상품으로 인식돼 왔다.
최근에는 PB 식품과 생활용품에서도 시각적 연출과 브랜드 서사가 강조되면서 가격과 기능뿐 아니라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이미지까지 관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PB가 제조사 브랜드의 저렴한 대체재라는 인식을 넘어 독자적인 정체성과 브랜드 가치를 구축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현상은 온라인 유통 환경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비슷한 가격과 기능을 갖춘 제품이 스마트폰 터치 한 번에 한 화면에 나란히 노출되고 소비자는 몇 번의 스크롤만으로 다른 상품으로 이동할 수 있다. 상품 선택지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좋은 제품과 가격 경쟁력만으로 소비자의 관심을 오래 유지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소비자의 비교·선택 과정이 쉽고 빨라질수록 유통사에 요구되는 역할도 달라진다. 유통사의 역할도 상품 확보와 가격 경쟁을 넘어 제품 특성과 가치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제품의 의미를 재구성해 접점을 만드는 과정까지 유통사의 역량으로 요구되는 흐름이다.
두 현장에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역할 분담도 뚜렷했다. 쿠팡은 행사장에서 상품을 직접 판매하지 않고 제품 옆 QR코드를 통해 앱 구매로 연결했다. 결제와 배송은 온라인에서 처리하고 오프라인은 상품을 발견하고 브랜드를 인식하는 접점으로 활용한 것이다.
아카이브 앱크 역시 공간을 단순한 판매점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정식 개장 전 진행한 팝업에는 약 1500명이 방문했고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브랜드몰 신규 회원으로 가입했다. 오프라인에서 만들어낸 관심을 온라인 고객 관계로 이어가는 구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기능도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온라인은 검색·비교·결제·배송의 효율을 높이고 오프라인은 화면만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제품 이미지와 브랜드 맥락을 보여주는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물론 상품을 낯설게 보여준다고 해서 곧바로 구매가 뒤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연출을 보고 사진을 찍는 것과 실제 제품을 선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연출 자체가 목적이 되면 소비자의 기억에는 공간만 남고 정작 상품은 사라질 수도 있다.
상품 및 가격 차별성이 빠르게 좁혀지는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제품을 인식하고 기억하는 과정까지 브랜드 경쟁력에 포함된다. 제품에 대한 일시적 주목을 실제 구매와 재구매로 연결하기 위해선 상품의 실용적인 측면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남는 여운까지 관리해야 한다.
아카이브 앱크와 쿠팡의 두 현장은 유통 경쟁이 판매 효율을 넘어 상품 가치를 인식시키는 역량까지 요구하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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