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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왕 권혁, 다시 세계로] ② 일본 사무실 책상 하나에서 세계 선단까지…권혁의 30년

한석진 기자 2026-10-20 07:46:39

자본 부족했던 한국인 사업가, 일본 마루베니 신뢰 얻어 선주사업 기반 마련

현대상선 장기 용선계약·일본 저금리 금융 활용…250척 규모 선단으로 성장

권혁 시도그룹 회장 [그래픽=ChatGpt]


[경제일보] 1993년 일본 도쿄의 종합상사 마루베니 사무실 한쪽에 작은 책상 하나가 놓였다. 한국인 사업가 권혁이 세계 해운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공간이었다. 별도의 사무실도, 선박을 구입할 만한 자본도 없었던 권 회장에게 당시 가장 큰 자산은 일본 기업인들과 오랜 거래를 통해 쌓아온 신뢰였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은 훗날 250척 규모의 선단으로 성장하며 세계 해운시장에서 이름을 알리는 선주기업으로 발전했다.


권혁 시도그룹 회장이 일본에서 본격적인 해운사업을 시작한 지 30여년이 흘렀다. 일본 금융시장에서 신용을 확보하고 수천만달러에 달하는 선박 구입자금을 조달하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에서 확보한 사업 기반은 유럽과 아시아의 금융시장으로 확대됐고 자동차 운반선으로 출발한 사업은 벌크선과 유조선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19일 시도상선 자료 등에 따르면 권 회장이 해운업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74년 고려해운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선박 입출항과 선적서류를 처리하던 권 회장은 1979년 현대종합상사로 자리를 옮긴 뒤 현대자동차에서 수출 차량의 해상운송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한국 자동차산업은 해외 수출을 빠르게 늘리고 있었지만 완성차를 실어 나를 자동차 전용선은 일본 선사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에서 맡은 업무는 권 회장에게 해운사업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 선사들과 자동차 운반선 용선계약을 체결하고 선박 건조와 운용 과정에 참여하면서 관련 경험을 쌓았다. 자동차 수출이 늘어날수록 선박 확보의 중요성도 커졌다. 권 회장은 해운회사에서 배를 빌리는 업무를 넘어 선박을 직접 소유해 장기간 임대하는 사업의 가능성에 눈을 돌렸다.


1988년 일본 도쿄지사 발령은 권 회장의 인생을 바꾼 계기였다. 현지에서 일본 종합상사와 해운회사 관계자들을 만나며 국제 선박시장의 움직임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일본 금융기관들이 선박을 담보로 대규모 자금을 빌려주고 장기 용선계약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도 접했다. 훗날 독립해 선주사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인맥과 경험을 쌓은 시기였다.


1990년 7월 현대자동차를 떠난 권 회장은 일본에서 독자적인 사업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해운업무를 익혔다고 해도 개인사업자로 선박을 확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선박 한 척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수천만달러에 달했지만 권 회장에게는 이를 감당할 만한 자본이 없었다. 일본 기업들과 쌓은 인맥을 활용해 사업 구상을 설명하고 금융 지원을 받을 길을 찾아야 했다.


초기 사업자금에는 가족의 땀도 배어 있었다. 권 회장 부부는 현대자동차 재직 시절 서울 반포 인근에서 작은 분식집을 운영했다. 아내가 가게를 꾸렸고 권 회장도 퇴근 후 일을 거들었다. 만두와 국수 등을 팔아 조금씩 모은 돈은 약 1억원에 이르렀다. 선박 구입자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지만 독립사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종잣돈이 됐다.


사업의 돌파구는 일본 종합상사 마루베니에서 찾았다. 현대자동차 재직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마루베니 관계자는 중고 자동차 운반선을 매입해 해운회사에 임대하는 사업을 제안했다. 선박을 장기간 빌려 사용할 고객만 확보한다면 이를 근거로 매입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선박을 살 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권 회장에게 새로운 사업 방식이 열린 것이다.


권 회장은 곧바로 현대상선을 찾아갔다. 자동차 수출 물량이 늘어나면서 운반선 확보가 필요했던 현대상선에 장기 용선계약을 제안했다. 일본에서 선박을 확보해 제공할 테니 일정 기간 배를 빌려 사용해 달라는 구상이었다. 현대자동차에서 수출 차량의 해상운송을 담당하며 쌓은 경험과 인맥이 독립사업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현대상선과의 장기 용선계약은 일본에서 선박금융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선박을 구입하려는 사업자의 자본뿐 아니라 배를 빌려 사용할 회사가 장기간 임대료를 지급할 수 있는지도 중요했다. 안정적인 용선계약이 확보되자 권 회장의 사업 구상도 실현 가능성을 높여갔다. 자동차 수송 업무에서 얻은 경험이 선박 소유사업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마루베니의 투자 결정을 얻기까지는 까다로운 심사도 거쳐야 했다. 권 회장은 네 차례에 걸쳐 면담을 받으며 사업 능력과 추진력, 성실성 등을 평가받았다. 공식적인 사업 설명뿐 아니라 함께 식사하고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도 거래 상대방으로서의 신뢰를 살폈다. 오랜 거래관계와 신용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문화 속에서 한국인 개인사업자가 인정받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 것이다.


마루베니는 현대상선과의 용선계약을 토대로 금융 지원에 나섰고 권 회장은 1993년 본격적인 선주사업에 뛰어들었다. 선박을 확보해 해운회사에 빌려주고 장기간 임대료를 받는 사업이었다. 권 회장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많은 선박을 확보하는 일이 아니었다. 금융기관에서 빌린 자금을 안정적으로 상환하고 거래처와의 계약을 지켜 다음 선박에 투자할 수 있는 신용을 쌓는 일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자동차 운반선에 집중했다. 국내 자동차 수출이 늘어나면서 운반선 수요도 확대됐고 현대상선과의 장기 용선계약은 안정적인 사업 기반이 됐다. 계약에 따라 들어오는 임대료를 바탕으로 대출금을 갚고 새로운 선박을 확보했다. 선박 운용 실적이 쌓이면서 일본 금융기관과의 거래 규모도 커졌다. 권 회장은 이러한 방식으로 2000년을 전후해 자동차 운반선 30여척을 확보했다.


일본의 저금리 금융환경도 사업 확대에 힘을 보탰다. 당시 일본에서는 엔화 자금을 연 1~2% 수준의 낮은 금리로 조달할 수 있었다. 국제 해운시장에서 선박 임대료와 운임은 주로 달러화로 지급됐다. 권 회장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엔화 대출을 선박 투자에 활용하면서 자금 조달 비용을 줄였다. 선박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거액의 자본을 금융기관에서 빌리고 장기계약을 통해 상환하는 사업 방식이 자리를 잡았다.


자금 조달 능력이 커지자 사업영역도 넓어졌다. 자동차 운반선에서 출발해 벌크선과 유조선, 컨테이너선 등으로 선종을 확대했다. 일본 금융기관에 집중됐던 거래도 유럽 등 해외 금융시장으로 넓혀갔다. 금융기관과의 거래 실적이 새로운 자금 조달로 이어지고 확보한 자금은 다시 선박 투자에 활용됐다. 처음에는 책상 하나를 빌려 시작했던 사업이 세계 여러 해역에서 선박을 운용하는 규모로 커졌다.


2000년대 중반 세계 해운시장의 호황은 시도그룹의 성장에 속도를 더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원자재 수요가 늘어나면서 벌크선 운임과 선박 가격이 상승했다. 국제 교역 확대에 따라 선박 수요도 증가했다. 권 회장은 기존 선박의 운용과 함께 새로운 선박 건조계약을 확대하면서 선단 규모를 키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는 건조 중인 발주 선박을 포함해 약 250척에 이르렀다.


그러나 급속한 성장 뒤에는 금융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해운경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선박 가격과 운임이 하락했고 금융기관들의 신규 대출도 위축됐다. 호황기에 체결한 선박 건조계약은 경영에 부담으로 돌아왔다. 권 회장은 일부 선박을 처분하고 발주계약을 조정하면서 시장 변화에 대응했다.


금융위기는 선박을 많이 확보하는 것만으로 사업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선박 가격이 오를 때는 자산이 늘어나지만 시장이 꺾이면 대규모 금융채무가 부담으로 돌아온다. 권 회장에게도 선박 매입과 금융 조달 못지않게 불황을 견디기 위한 자산 관리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 선단을 키우는 과정에서 쌓은 경험을 위기 대응에도 활용해야 했다.


권 회장의 30여년 해운 경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자본보다 신용을 먼저 쌓았다는 점이다. 선박을 구입할 돈이 없던 시절에는 장기 용선계약으로 금융기관을 설득했고 계약을 지키며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선박을 확보했다. 일본에서 시작된 거래는 유럽 금융시장으로 확대됐고 자동차 운반선에 머물렀던 사업도 다양한 선종으로 넓어졌다.


1993년 마루베니 사무실 한쪽의 책상 하나에서 시작한 사업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 250척 규모의 선단으로 성장했다. 일본 해운·금융업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한국인 사업가가 세계 해운시장에서 '한국판 오나시스'라는 별칭을 얻기까지의 과정이었다. 권 회장이 일군 선단의 출발점에는 거액의 자본이 아니라 오랜 거래에서 쌓아 올린 신용이 있었다.

[아주경제 2026년 10월 20일자 14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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