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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화계 핫이슈] 은폐·훼손 얼룩진 '증도가자'… 허민 청장 "101점 재검증" 약속

한석진 기자 2026-10-27 06:00:00

임오경·조계원 의원, 심의 공정성·전국 공모 추진 추궁… 국가유산청 기존 방침 수정

남권희 교수, 먹 연대·활자 형태 등 진위 판단 근거 반박… 유물 훼손·관련 공무원 형사책임도 논란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2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유산청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문체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고려 금속활자 '증도가자(證道歌字)'의 보물 지정 부결 과정에서 심의자료 누락과 심사위원의 공정성 문제가 잇따라 제기되자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기존 심의 참여자들을 배제하고 새로운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전국 금속활자 일괄공모를 추진해 온 국가유산청이 국회의 집중 추궁 끝에 기존 신청 유물 101점에 대한 새로운 검증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27일 국회와 국가유산청 등에 따르면 지난 2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은 과거 보물 지정 부결에 관여했던 위원과 전문위원들의 재참여 문제를 추궁하며 심의위원회 전면 재구성을 요구했다. 이에 허 청장은 새로운 위원 구성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을 밝히고 기존 신청 유물 101점을 철저하게 검증하겠다고 답변했다.
 
같은 당 조계원 의원은 기존 신청 유물의 진위 판단을 마무리하지 않은 채 전국 금속활자 일괄공모를 추진하는 국가유산청의 행정을 비판했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남권희 경북대 명예교수도 조사 대상을 확대하면 상당한 시간이 추가로 소요된다며 일괄공모 방식에 반대했다. 남 교수는 2010년 증도가자를 학계에 공개하고 2014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주한 기초학술조사를 이끈 서지학자다.
 
◆ 국감서 기존 심사위원 배제 약속… 김종춘 회장 요구 수용
 
증도가자는 고려시대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인쇄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금속활자다. 실제 이 책을 찍은 활자로 확인되면 제작 시기는 1239년 이전으로 올라간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1377년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앞선 금속활자 실물로, 세계 인쇄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보성갤러리(회장 김종춘)는 2011년 10월 6일 소장 금속활자 101점(증도가자 59점·네다리활자 42점)에 대한 보물 지정을 신청했다. 김 회장에 따르면 당시 엄승용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기획국장이 수차례 찾아와 문화재 지정을 권유했다. 그러나 약 6년에 걸친 조사 끝에 2017년 4월 13일 문화재위원회는 보물 지정을 부결했다.
 
이후 감사원에 제기된 문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당시 심의자료의 핵심 수치가 누락되거나 원본과 다르게 보고된 사실이 드러났다. 조판실험에 관한 비교자료가 빠지고 전문가의 추정적 판단이 확정적인 표현으로 변경된 경위는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김 회장은 심의자료의 문제와 함께 과거 부결 결정에 관여했던 인사들이 새로운 검증에도 참여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국가유산청에 이의를 제기해 왔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제규 전문위원이다. 정 전문위원은 2017년 증도가자 보물 지정 심사에 관여했으며, 이후 국가유산위원회의 관련 검토 과정에도 참여해 왔다.
 
심의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은 2017년 부결 이전부터 있었다. 당시 문화재위원회 동산문화재분과위원장이었던 박문열 전 위원장은 2013년 언론 인터뷰에서 고미술상이 소장한 유물을 문화재로 지정해 가격이 오르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취지로 발언했다.

김 회장은 소장자의 직업에 대한 편견이 심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2014년 박 전 위원장에 대한 기피를 신청했다. 그러나 박 전 위원장은 2017년 보물 지정 심의에 참여했다.
 
김 회장은 지난 13일 국가유산청장과 국가유산위원회 동산문화유산분과위원장에게 정 전문위원에 대한 제척·기피와 당시 심의 간사였던 황권순 전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장의 관련 업무 배제를 요구하는 신청서를 다시 제출했다.
 
현행 '국가유산위원회 규정' 제11조는 해당 안건에 직접 관여한 위원이나 전문위원 등의 제척·기피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김 회장은 과거 부결 판단에 관여한 인사들이 새로운 심의까지 맡는다면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 임 의원이 이 문제를 지적하자 허 청장은 전문위원에게 최종 결정권이 없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도 제척 필요성에는 동의했다.
 
이어 23일 종합국정감사에서 임 의원이 심의위원회 전면 재구성을 요구하자 허 청장은 "새롭게 위원을 구성하는 데 100%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기존 신청 활자 101점에 대해서도 새로운 위원회를 구성해 철저하게 검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회장이 요구해 온 과거 심의 참여자 배제와 새로운 검증 방안을 국가유산청장이 국회에서 수용하면서 향후 위원회 구성과 심의 절차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23일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남권희 경북대 명예교수가 증도가자 문화재 지정 부결 의혹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캡처]

◆ 먹 연대부터 활자 형태까지… 남권희 교수, 기존 진위 판단에 반론
 
이번 종합국정감사에서는 증도가자의 진위를 둘러싸고 제기됐던 과학적·서지학적 의문도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임 의원은 먹의 연대와 활자 형태, 옛 문헌에 나타나는 글자 등을 거론하며 남 교수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쟁점 가운데 하나는 활자에 남아 있는 먹의 탄소연대였다. 일부 먹 성분에서 활자 제작 추정 시기보다 훨씬 앞선 삼국시대 연대가 검출되면서 오래된 먹이 묻어 있는 이유와 활자의 진위를 둘러싼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남 교수는 먹을 만드는 데 사용한 나무의 연대와 실제 먹을 제조한 시기가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려시대에 오래된 목재를 태워 먹을 만들었다면 탄소연대가 활자 제작 시기보다 앞서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활자의 형태가 서로 다르다는 점도 진위 논란의 대상이었다. 조사 대상에는 홈형과 홈날개형, 네다리형 등 여러 형태의 금속활자가 포함돼 있다.
 
남 교수는 금속활자 제작 기술이 시대에 따라 발전했으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에서도 다양한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로 다른 형태의 활자가 함께 발견됐다는 이유만으로 위조 가능성을 제기하기보다 제작 시기와 주조기술의 특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활자에 현대 옥편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글자가 포함됐다는 지적에도 반론을 제시했다. 남 교수는 해당 글자들이 과거 중국에서 편찬된 자전 등에 등장하는 옛 글자라며 현대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위조의 근거로 삼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의 반론은 과거 국가기관이 수행한 기초학술조사 결과와도 연결된다. 2014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주하고 경북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조사에는 서지학과 보존과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다보성갤러리 소장 101점과 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 7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점 등 금속활자 109점을 조사했다. 서체와 금속 성분, 먹의 탄소연대 등을 분석한 뒤 고려시대 금속활자로 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그러나 2017년 문화재위원회는 조판 가능성과 출처·소장 경위 등을 이유로 보물 지정을 부결했다. 남 교수는 당시 심의에 금속활자 관련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들이 참여했고, 선행 연구를 수행한 전문가들과 충분한 학술적 토론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국가유산청이 새로운 검증을 약속하면서 기존 연구 결과와 부결 판단 사이에 나타난 차이를 어떤 방식으로 다시 판단할지도 향후 심의의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전국 공모 고수하던 국가유산청… 101점 재검증 일정은 언제
 
국가유산청의 전국 금속활자 일괄공모 계획도 종합국정감사에서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김 회장은 지난해 8월 감사원에 증도가자 보물 지정 부결 과정의 문제를 제보했다. 감사원은 같은 해 9월 관련 사안을 국가유산청에 이첩했고, 국가유산청은 올해 1월 자체감사를 실시한 뒤 2월 처분요구사항을 통보했다.
 
그러나 지난 8월 13일 국가유산위원회 동산문화유산분과는 자체종합감사 처분요구사항 검토 안건을 부결했다. 반면 증도가자 계열 금속활자를 일괄공모해 새롭게 조사하는 계획은 별도 보고 안건으로 접수했다. 과거 심의자료의 문제에 대한 후속 조치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된 것이다.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도 허 청장은 기존 신청 유물의 출토 경위가 불분명하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활자가 섞여 있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전국 공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 의원은 23일 종합국정감사에서 이미 상당한 조사와 연구가 이뤄진 기존 101점부터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 역시 새로운 활자를 추가로 확보하면 금속 성분과 서체, 제작 연대 등을 다시 분석해야 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기존 신청 유물에 대한 판단이 장기간 미뤄진 상황에서 새로운 금속활자를 모집하고 조사하는 방식이 또 다른 심의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의 잇따른 추궁에 허 청장은 기존 101점을 대상으로 새로운 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전국 일괄공모 계획을 어떻게 처리할지, 새로운 심의를 언제 시작할지에 관한 구체적인 일정은 제시하지 않았다.
 
과거 심의에 관여하지 않은 전문가들의 선정 기준과 기존 심의 관계자들의 배제 범위도 정해야 한다. 국가유산청이 국회에서 밝힌 방침을 실제 조사와 심의에 어떻게 반영할지 주목된다.
 
◆ 국가기관이 고려 금속활자 5점 훼손… 문화재보호법 위반·형사책임 논란까지
 
국가기관의 조사 과정에서 금속활자가 훼손된 사건도 국가유산청이 풀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2016년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다보성갤러리 소장 금속활자를 조사하던 중 활자 5점이 손상됐다. 이 가운데 1점은 글자 일부 약 7%가 떨어져 나갔고, 나머지 4점도 측면과 뒷면의 부식층이 벗겨졌다. 당시 연구소도 조사 과정에서 활자가 손상된 사실을 인정했다.
 
조사 중 떨어져 나온 활자 파편은 이후 납동위원소 분석 등에 사용됐다. 김 회장은 이미 떨어져 나온 파편의 분석에는 동의했지만, 활자 자체를 훼손하는 것까지 허락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김 회장 측은 국가기관의 조사 과정에서 발생한 유물 훼손과 파편 처리 경위를 문제 삼아 당시 문화재보호법 위반 여부를 따지고,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고소와 손해배상 청구도 고려하고 있다.
 
2017년 보물 지정 심의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도 형사책임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원본 조사보고서의 핵심 측정 수치가 심의자료에서 빠지고 전문가의 추정적 판단이 확정적인 표현으로 바뀐 경위와 관련해 허위공문서작성죄와 허위작성공문서행사죄 적용 가능성이 거론된다.
 
특히 당시 심의 간사였던 황권순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장이 추가 조사와 재심의에 따른 부담을 이유로 부결 의견을 제시했다는 녹취 내용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관련한 쟁점이다.
 
김 회장 측은 원본 조사보고서와 심의자료, 회의록 및 관련 녹취 등을 근거로 형사 고소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 대통령에 진상 규명 촉구 탄원서… 국회의장 등에도 추가 제출 예정
 

이와 별도로 김 회장은 증도가자 보물 지정 부결 과정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탄원서에는 2017년 보물 지정 심의자료의 누락·변경 경위와 관련 공무원들의 역할, 국가기관의 조사 과정에서 발생한 금속활자 훼손 문제 등이 담겼다. 김 회장은 당시 심의의 적정성과 관련자들의 책임을 규명하고, 기존 신청 유물 101점에 대한 공정한 검증이 이뤄질 수 있도록 대통령의 관심과 조치를 요청했다.


김 회장은 대통령에게 제출한 탄원서의 처리 결과를 지켜본 뒤 국회의장과 감사원장, 경찰청장 등 관계기관에도 추가로 탄원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각 기관의 권한과 역할에 맞춰 필요한 조사와 후속 조치를 요청할 방침이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23일 종합국정감사에서 기존 심의 참여자들을 배제하고 새로운 검증을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16년 금속활자 5점의 훼손 경위와 2017년 심의자료 누락·변경 과정, 관련자들의 책임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새로운 검증의 추진 일정과 과거 심의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한 후속 조치도 남아 있다.
 

김 회장은 이러한 논란이 장기간 이어지는 사이 중국 일부 학계에서 증도가자를 송·원대 유물로 보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 회장은 중국에서 우리 금속활자를 자국 유물이라고 주장하는 동안 정작 국내에서는 심의자료 누락과 부결 종용 의혹조차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며 "도대체 어느 나라 공무원인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아주경제 2026년 10월 26일자 14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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