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지 9일 만에 다시 군사적으로 충돌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상선 공격을 둘러싸고 양측이 서로 “합의 위반”이라고 맞서면서 어렵게 마련된 종전 MOU가 첫 중대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 중부사령부는 26일 이란을 상대로 공습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전날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싱가포르 선적 컨테이너선 ‘에버 러블리’가 이란의 드론 공격을 받은 데 대한 대응 조치라는 설명이다. 미군 항공기는 이란의 미사일·드론 저장시설과 해안 레이더 기지를 타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 美 “항행의 자유 훼손”…이란 “미국이 먼저 위반”
중부사령부는 이란의 상선 공격이 휴전을 명백히 위반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운송의 핵심 통로다. 이곳의 통항 불안은 국제유가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번질 수 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도 “이란이 MOU 이행 방식에 이견이 있다면 외교 채널로 연락하면 된다”며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란의 상선 공격을 휴전 합의 위반으로 규정하며 대응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란도 반발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는 미국의 공습을 휴전 위반으로 규정하고 역내 미군 주둔지 여러 곳을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이란 측은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통항 절차를 무시하고 이란 해안을 공격했다고 반박했다. 다만 이란이 주장한 미군기지 타격의 구체적 피해 규모는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충돌은 종전 MOU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드러냈다. 미국과 이란은 지난 17일 정식 서명한 MOU에서 모든 전선의 군사작전 중단, 호르무즈 해협 상업 선박 통항 회복, 핵 프로그램과 제재 해제 후속 협상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통항 권한과 해협 관리 절차를 둘러싼 해석 차이가 먼저 터져 나왔다.
미국 입장에서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는 이번 합의의 핵심 성과다. 이란의 상선 공격을 묵인할 경우 합의의 실효성이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이란은 자신들이 불리한 조건으로 MOU에 합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강하다. 향후 핵 협상과 제재 해제 논의에서 협상력을 잃지 않기 위한 군사적 메시지로도 읽힌다.
◆ 확전은 부담…오판 가능성은 여전
미국과 이란 모두 당장 합의를 깨는 데는 부담이 크다. 미국은 전쟁 재개에 따른 정치적 비용과 국제유가 불안을 의식해야 한다. 이란도 제재 완화와 핵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을 포기하기 어렵다. 양측이 강경 발언을 주고받으면서도 전면전에는 신중할 가능성이 있는 이유다.
문제는 돌발 상황이다. 상선 공격, 레이더 기지 공습, 미군기지 타격 주장 같은 제한적 충돌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인명 피해나 오판이 확전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레바논과 헤즈볼라, 이스라엘 변수까지 맞물려 있어 중동 전선의 불안정성도 여전하다.
합의문은 전쟁을 멈출 수 있지만 신뢰까지 보장하지는 못한다.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원칙과 군사적 대응 기준을 명확히 정리하지 못한다면 종전 MOU는 언제든 다시 흔들릴 수 있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울린 포성은 양측 협상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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