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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중동의 포성이 한국 경제를 흔들지 않으려면

송정훈 기자 2026-10-26 09:59:00

에너지·물류 충격, 상시 대응체계가 해법이다

[사진=AI 생성 이미지]

[경제일보] 중동에서 포성이 울리면 한국 경제는 유가부터 살핀다. 원유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이 안전한지가 관심사다. 그러나 이번 중동 위기는 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 에너지 안보를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원유가 있어도 운송할 선박을 구하기 어렵고, 운임과 보험료가 급등하면 기업의 생산비용은 높아진다.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에너지 수급을 넘어 제조업과 물류, 소비자물가까지 흔드는 구조다.
 
최근 국제 원유시장의 움직임은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22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0월 들어 중동의 원유 수출량은 하루 평균 1730만 배럴로, 전쟁 이전인 1~2월 평균 1690만 배럴을 웃돌았다. 원유 수출이 회복됐지만 운송 여건은 여전히 불안하다. 중동에서 중국으로 원유 200만 배럴을 운송하는 초대형 유조선의 용선료는 하루 약 140만 달러로, 전쟁 이전의 12배를 넘는 수준이었다. 유조선 보험료 역시 크게 뛰었다.
 
원유 물량이 회복돼도 운송비와 위험 비용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에너지 위기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원유를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확보한 원유를 얼마나 안정적인 비용으로 들여올 수 있느냐까지 따져야 한다. 특히 정유와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등 에너지와 물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산업에는 결코 가벼운 변화가 아니다.
 
지난 19일 로이터통신은 중동산 원유 수출이 회복되는 가운데서도 높은 해상운임이 아시아 정유업체의 수익성을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유를 수입해 석유제품으로 가공하는 정유업체는 국제유가뿐 아니라 운송비와 보험료, 정제마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원유 가격이 안정되더라도 물류비 부담이 커지면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다. 정유업체의 부담이 장기화하면 석유제품 공급과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이러한 외부 충격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원유와 천연가스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들여오고, 제조업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와 중간재도 국제 해상운송에 의존한다. 중동에서 출발한 유조선의 항해 일정이 흔들리면 국내 정유시설의 원료 조달과 생산계획에도 부담이 생긴다. 나프타와 같은 석유화학 원료의 공급이 불안해지면 플라스틱과 합성섬유, 자동차 부품, 전자제품 소재 등으로 영향이 번질 수 있다.
 
정부도 대응책을 마련해 왔다. 산업통상부는 중동 전쟁에 따른 원유 수급 차질을 줄이기 위해 비축유 교환제도인 스와프(SWAP)를 운영하고, 정유업체의 대체 원유 확보를 지원했다. 비축유 스와프는 정유업체가 해외에서 확보한 원유가 국내에 도착하기 전 정부 비축유를 먼저 빌려 사용하고, 이후 도입 물량으로 상환하는 방식이다. 수입선 다변화와 관련한 운송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도 추진됐다.
 
이러한 대응은 단기적인 공급 공백을 줄이는 데 의미가 있다. 다만 비축유를 활용해 시간을 벌었다고 해서 공급망 위험까지 해소된 것은 아니다. 대체 원유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운송 거리가 길어지거나 선박 확보 비용이 높아지면 또 다른 부담이 발생한다. 미국과 아프리카 등으로 원유 수입선을 넓히더라도 정유시설과의 적합성, 계약 조건, 항만 처리 능력까지 고려해야 한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이제 확보 물량과 실제 도입 비용을 함께 살펴야 한다. 원유 계약량이 충분한지뿐 아니라 국내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 대체 항로의 안정성, 선박과 보험 확보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공급망의 안정성을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계약서에 적힌 물량보다 중요한 것은 필요한 시점에 국내 산업이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이다.
 
전략비축의 운용 방식도 정교해져야 한다. 비축유는 공급 차질이 발생했을 때 기업과 시장이 대응할 시간을 벌어주는 안전판이다. 그러나 비축 규모만으로 대응 능력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실제 공급 중단과 일시적인 가격 상승을 구분하고, 비축유 방출과 민간 재고 활용, 사후 재비축의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 비축유가 위기 때마다 동원되는 임시방편에 머물지 않으려면 평상시 운용계획과 점검이 뒷받침돼야 한다.
 
해운 안전 역시 에너지 안보의 중요한 축이다. 호르무즈 해협과 주변 해역의 항행 위험이 높아지면 선사들은 우회항로와 선박 운용 방식을 조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운송 기간이 늘어나고 보험료와 용선료가 상승한다. 정부는 선박의 위치와 항행 위험, 대체 수송로에 관한 정보를 해운업계와 신속하게 공유하고 비상 연락체계를 점검해야 한다. 선원과 선박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은 운송비 절감보다 우선한다.
 
문제는 이런 충격을 감당하는 기업의 능력이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대형 정유사와 종합상사는 장기 계약과 해외 네트워크, 자체 재고를 활용해 위험을 분산할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반면 중소 수출기업은 원자재 가격과 운임이 동시에 오르면 대응 수단이 제한적이다. 납기 지연으로 거래처와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고, 운송비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면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의 지원은 이러한 차이를 반영해야 한다. 물류비 부담이 크고 대체 공급선을 확보하기 어려운 기업을 우선 파악하고, 공동 운송과 물류 정보 제공, 긴급 금융지원 등을 연계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모든 비용 상승을 재정으로 보전할 수는 없다. 다만 일시적인 외부 충격으로 정상적인 생산과 수출이 중단되는 상황은 줄여야 한다. 지원 대상과 기간, 종료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 근본적인 과제는 공급망 대응을 비상회의 중심에서 상시 관리체계로 바꾸는 일이다. 중동에서 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관계부처가 모여 수급 상황을 점검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산업통상부와 해양수산부, 외교부, 기획재정부, 금융당국이 보유한 정보를 연결해 주요 원자재의 수입 의존도와 재고, 운송 지연, 가격 변동을 함께 살펴야 한다.
 
위험 신호가 나타났을 때의 판단 기준도 미리 마련해야 한다. 특정 해역의 통항 차질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대체 항로를 가동할지, 원자재 재고가 얼마나 줄어들면 비축 물량을 활용할지, 운임 상승이 어느 정도 지속되면 취약기업 지원을 검토할지 정해 놓는 방식이다. 모든 위기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대응 기준이 분명하면 부처 간 협의와 의사결정에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기업의 경영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원료를 가장 저렴하게 조달하는 능력과 위기 때도 생산을 이어가는 능력은 다르다. 구매 부서는 조달 가격과 함께 공급선 집중도, 대체 가능성, 운송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경영진 역시 핵심 원자재의 재고와 물류비 변동을 정기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평상시 비용 절감에만 맞춘 공급망은 외부 충격이 닥쳤을 때 더 큰 손실을 부를 수 있다.
 
중동 정세를 한국이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충격이 국내 산업과 국민 생활로 전달되는 경로는 관리할 수 있다. 원유 수입선을 넓히고, 비축유의 활용체계를 정비하며, 안전한 해상운송과 취약기업 지원을 연결하는 일은 평상시부터 준비해야 효과를 낸다.
 
중동의 원유 수출이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했는데도 운임과 보험료 부담이 높은 현실은 분명한 경고다. 공급망 위기는 원유가 부족할 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물량이 충분해도 이를 실어 나르는 비용과 위험이 통제되지 않으면 산업 현장은 흔들린다. 정부와 기업이 준비해야 할 것은 다음 위기 때 발표할 비상대책이 아니라, 위기가 닥쳐도 생산과 물류를 지탱할 수 있는 상시 대응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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