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서울 경계에서 약 5㎞ 이내에 있는 경기 5개 시 6곳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대상으로 7만6700가구 규모의 신규 공공택지 후보지를 발표했다. 김포·구리·하남·의정부·고양에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발표한 2만7200가구를 합하면 수도권 신규 택지는 10만3900가구에 이른다. 주택 수요가 집중된 서울 인근에 공급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향은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발표된 숫자가 실제 공급 물량이 되기까지 얼마나 걸리느냐다. 이번에 공개한 것은 확정된 입주 물량이 아니라 신규 택지 후보지다. 정부는 2030년 안에 착공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7만6700가구 가운데 실제로 그때까지 착공할 물량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국토교통부는 첫 입주 시점도 빨라야 2033년으로 예상했다. 당장 집을 구해야 하는 실수요자에게는 먼 훗날의 계획일 수밖에 없다. 공급 대책이 시장의 신뢰를 얻으려면 발표보다 구체적인 사업 일정이 앞서야 한다.
역대 신도시와 공공택지 사업에서 되풀이된 문제도 여기에 있다. 지구 지정 이후 토지 보상과 주민 협의, 환경영향평가, 지구계획 승인과 각종 인허가가 늦어지면서 착공과 입주가 계획보다 밀렸다. 공급 발표와 실제 입주 사이에 긴 공백이 생기는 동안 주택 수급 불안은 이어졌다. 이번에도 같은 과정을 밟는다면 7만6700가구라는 숫자는 시장에 공급 기대를 심어주기보다 또 하나의 장기 개발계획으로 남을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사업에 별도의 신속 추진 체계를 적용해야 한다.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 관계 기관이 보상·환경·교통·인허가 문제를 함께 검토하고, 각 단계의 처리 기한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 부처별 협의를 순서대로 진행하다 시간을 보내는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 토지 보상과 주민 이주 대책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당한 보상과 충분한 협의 없이 속도만 앞세우면 주민 반발로 사업이 더 늦어질 수 있다. 신속한 행정과 주민 권익 보호를 함께 챙겨야 한다.
교통망은 주택 공급과 따로 추진할 일이 아니다. 아파트부터 짓고 입주한 뒤 철도와 도로를 보완하는 방식으로는 주민의 출퇴근 불편을 막을 수 없다. 2기와 3기 신도시에서 광역교통 대책이 입주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주민들이 장기간 교통난을 겪은 사례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이번 후보지의 교통 여건도 제각각이다. 고양 대곡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와 지하철 3호선 등 5개 철도 노선이 지나는 곳이지만, 김포는 5호선 연장사업이 추진 중이고 하남은 3호선·9호선 연장사업과 연계한 교통대책이 필요하다. 기존 노선이 있는 곳과 앞으로 교통망을 확충해야 하는 곳을 구분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는 후보지별 광역교통개선대책을 주택 사업과 동시에 확정하고, 철도·도로의 재원 조달과 착공·개통 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특히 입주가 시작되기 전에 주요 교통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사업 순서를 조정해야 한다. 노선 계획만 발표하고 사업비 확보나 착공을 미루면 주민에게 교통 불편을 떠넘기는 결과가 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관계 기관 사이에서 비용 부담을 놓고 책임을 미루는 일도 없어야 한다.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환경 보전 대책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정부는 이미 훼손돼 보전 가치가 낮고 난개발 우려가 있는 지역을 후보지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더라도 개발 과정에서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고 공원과 녹지, 학교와 의료시설 등 생활 기반시설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공급 물량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개발 밀도를 높이거나 기반시설을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
지역 균형 발전도 주택 숫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일자리와 교육·문화·의료시설이 함께 들어서야 지역에 정착하는 인구가 늘어난다. 주거지만 조성하고 일자리는 서울에 남겨둔다면 출퇴근 수요만 키우는 베드타운이 될 수 있다. 후보지 인근 산업단지와 업무시설을 연계하고 자족 기능을 확보하는 방안도 구체화해야 한다.
정부가 국민에게 제시해야 할 것은 7만6700가구라는 공급 목표만이 아니다. 언제 보상을 마치고, 언제 착공하며, 언제 입주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일정표다. 교통망도 어느 시점에 어떤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지 밝혀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사업 단계별 진행 상황과 지연 사유를 공개하고, 관계 기관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회와 지자체도 정쟁이나 지역 간 이해관계에 매달리지 말고 필요한 예산과 행정 절차를 뒷받침해야 한다.
그린벨트 해제는 주택 공급의 출발점이지 성과가 아니다. 토지 보상과 인허가가 늦어지면 착공도 늦어지고, 교통망이 따라오지 못하면 입주민의 불편은 고스란히 커진다. 이번에도 공급 발표만 앞세우고 실행을 미룬다면 정부는 과거 신도시 개발의 실패를 되풀이하게 된다. 주택은 계획대로 공급하고 교통은 입주 전에 갖춰야 한다. 7만6700가구라는 약속을 실제 주거 안정으로 바꾸는 책임은 정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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