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정부가 미국과 이란 간 긴장 완화 흐름에도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당분간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국제유가가 전쟁 국면 당시보다 크게 하락했지만 호르무즈 해협 통항 정상화가 실제 원유 수급 안정으로 이어질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동시에 정부는 정유업계 손실보전 기준을 ‘원가+적정마진’ 방식으로 확정했다. 보전 규모를 둘러싼 정부와 업계 간 이견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양기욱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전날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당초 19일 0시부터 적용 예정이었던 7차 석유제품 최고가격 고시를 보류하고 현재 적용 중인 6차 최고가격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 실장은 "호르무즈 통항 상황 등을 이번 주말부터 지켜볼 계획"이라며 "판단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6차 최고가격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최고가격은 휘발유 리터당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이다.
이번 조치는 국제유가가 빠르게 안정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최고가격제 해제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17일 기준 브렌트유는 배럴당 79.55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76.79달러, 두바이유는 73.91달러를 기록했다. 전쟁 기간 한때 100달러를 웃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폭 하락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국내 유류 가격 때문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현재 최고가격은 시장에서 형성될 수 있는 가격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제도를 즉시 종료할 경우 주유소 판매가격이 단기간에 상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앞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 정상화 여부와 국제유가 흐름, 국내 물가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고가격제 조정 또는 해제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고가격제 유지 여부와 함께 또 다른 쟁점은 정유사 손실보전이다. 산업부가 행정예고한 '석유판매가격 최고액 지정에 따른 손실보전을 위한 재정지원 규정'에 따르면 손실보전금은 실제 투입된 원가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원유와 석유제품 구매비용, 운송비, 보험료, 감가상각비, 인건비, 연료비, 국내 유통비 등 생산·판매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이 모두 포함된다. 여기에 정유사의 정상 영업활동을 고려한 적정 마진도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업계가 요구해 온 MOPS 기준은 채택하지 않았다. MOPS는 국제 가격평가기관 플래츠가 산정하는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 지표로, 아시아 석유제품 거래에서 기준 가격으로 활용된다. 정유사들은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국제 시세에 맞춰 판매할 수 있었던 만큼 손실 역시 MOPS 기준으로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재정을 지원하는 만큼 실제 발생한 비용을 중심으로 보전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양 실장은 "업계는 더 많은 이윤을 바라는 것이 당연하지만 정부와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수출을 통해 더 비싸게 팔 수 있었다는 주장도 가능하지만 손실보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정유업계에서는 정책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수익성 부담은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최고가격제 도입 취지인 민생 안정과 에너지 수급 안정화에는 공감하며 정부 정책에 협조할 예정"이라면서도 "제도가 연장될 경우 수익성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손실액 산정과 보전 기준 등 세부 사항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구체적인 영향 규모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도 "당장 종전 합의가 이뤄져도 전쟁 이전 수준의 통행량 회복과 국내 유가 하락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며 "정부 고시 제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고가격제로 인해 국제가 대비 기회손실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며, 제도가 지속 연장될 경우 수익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가 추산하는 손실 규모는 3조~4조원 수준으로 알려졌지만 정부는 MOPS 기준이 반영된 수치인 만큼 실제 보전액은 이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는 현재 확보한 4조2000억원 규모 재원으로 손실보전에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향후 구성될 최고액 정산위원회가 적정 마진 수준과 보전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가격 통제 종료 시점과 손실보전 규모를 둘러싼 정부와 업계의 신경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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