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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美 중간선거 앞둔 한국 산업계, 플랜B 있나

송정훈 기자 2026-11-03 15:30:00

의회 권력 바뀌어도 미국 우선주의 지속…대미 투자 성과·공급망 전략 재점검해야

[사진=AI 생성 이미지]

[경제일보] 미국이 3일 중간선거를 치른다. 트럼프 행정부의 남은 임기 2년 동안 의회 권력을 누가 쥐느냐가 결정되는 선거다. 한국 산업계도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의회의 정책 변화가 사업에 미칠 영향이 작지 않아서다. 그러나 한국이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는 어느 정당이 승리하느냐가 아니다. 미국의 정치적 변화에 따라 투자 계획과 생산 전략을 거듭 수정해야 하는 산업구조를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이나 상원의 다수당을 차지하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의회의 견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첨단산업 지원 예산과 세제 혜택, 통상정책을 둘러싼 갈등도 예상된다. 다만 의회 구성이 바뀐다고 대통령의 관세 부과나 수출통제 권한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의회가 법률로 행정부에 상당한 통상 권한을 위임해 놓은 나라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정책의 추진 속도와 집행 여건은 달라질 수 있지만, 기존 통상정책이 전면적으로 뒤집힐 것이라는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와 중국 견제도 마찬가지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전략산업의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은 특정 정당만의 정책이 아니다. 지원 방식과 규제 수단에는 차이가 있어도 첨단기술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목표는 양당이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미국의 선거 결과에 따라 보조금과 관세 부담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며 투자 전략을 세운다면 위험을 키우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과 배터리 생산시설, 자동차 공장을 건설하며 현지 공급망 확대에 참여해 왔다. 미국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출하고 주요 고객과의 거래를 확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현지 생산을 통해 관세와 물류 부담을 줄이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확보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대미 투자 자체를 잘못된 판단으로 볼 이유는 없다.
 
문제는 투자 규모에 비해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충분히 확보됐느냐다. 기업이 장기간에 걸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동안 미국의 보조금과 세액공제, 원산지 규정, 대중국 수출통제는 사업 수익성에 영향을 미친다. 정책이 바뀌면 생산 일정과 자금 조달 계획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특히 미국과 중국에 생산시설이나 고객사를 동시에 두고 있는 기업은 양국의 규제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까지 안고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가 받는 영향도 같지 않다. 반도체는 첨단기술 수출통제와 현지 생산 지원이 중요하다. 배터리는 세액공제와 원산지·공급망 규정에 민감하다. 자동차는 관세와 현지 생산 비중, 부품 조달 구조에 따라 비용이 달라진다. 정부가 산업별로 다른 위험을 하나의 통상 대책으로 관리하기 어려운 이유다. 미국 의회의 입법과 예산 심의, 행정부의 규제 집행을 구분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국내 산업 기반에 미칠 영향도 따져봐야 한다. 해외 생산 확대가 곧바로 국내 산업 공동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지 공장이 늘면서 국내에서 생산한 장비와 소재의 수출이 증가할 수도 있다. 반면 핵심 공정과 연구개발 인력까지 해외로 이동한다면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 생태계가 약해질 우려가 있다. 대미 투자 성과를 발표할 때 현지 투자액과 고용 규모뿐 아니라 국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협력업체에 돌아오는 효과도 함께 평가해야 한다.
 
이제 정부와 산업계는 미국 시장에 대한 대응과 별도로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아세안과 인도, 유럽연합(EU), 중동 등으로 수출시장과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미국 의존도를 단기간에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곤란하다. 첨단 반도체와 자동차 등은 시장 규모와 고객 구조에 따라 미국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기존 시장을 지키면서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는 접근이 현실적이다.
 
공급망 관리도 달라져야 한다. 핵심 소재와 부품을 특정 국가에서만 조달하는 구조라면 통상 분쟁이나 수출 제한이 발생했을 때 생산 차질을 피하기 어렵다. 기업은 주요 품목의 대체 조달선을 확보하고, 정부는 공급망 위험이 큰 산업을 중심으로 비상 수급체계를 점검해야 한다. 비용이 다소 늘더라도 생산을 중단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한 경쟁력이다.
 
기술 경쟁력 확보는 더욱 근본적인 과제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첨단 패키징, 차세대 배터리, 전력반도체 등에서 경쟁 우위를 유지하려면 연구개발과 인력 양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미국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은 기업의 투자 판단에 영향을 주지만 기술력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제품과 기술을 보유할수록 통상 협상에서도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정부의 통상 대응 방식 역시 점검할 때다. 미국의 정책 변화가 발표된 뒤 기업의 피해를 파악하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의회의 법안 심의와 예산 편성, 행정부의 규정 개정, 주정부의 지원 조건을 상시 분석하고 산업별 영향을 미리 검토해야 한다. 정부 부처와 기업 사이에 정보가 제때 공유되는지도 중요하다. 이미 운영 중인 통상 대응체계를 활용하되, 책임 소재와 의사결정 절차를 명확히 하는 편이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대미 경제외교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투자 규모나 협력 약속만으로 성과를 판단하기 어렵다. 우리 기업이 확보한 시장 접근 조건과 정책의 예측 가능성, 국내 산업에 돌아오는 실질적인 효과를 살펴야 한다.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무엇을 얻었고 어떤 부담을 떠안았는지 국민에게 설명하는 일도 필요하다.
 
<손자병법> ‘구변편’에는 '상대가 오지 않을 것만 믿지 말고, 내가 대비돼 있음을 믿으라(無恃其不來 恃吾有以待也)'는 가르침이 있다. 위험이 닥치지 않기를 바라기보다 미리 대응할 능력을 갖추라는 뜻이다. 미국의 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한국 산업계에도 적용할 만한 말이다. 어느 정당이 의회를 장악하든 미국의 국익을 앞세우는 정책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역시 그 현실을 전제로 준비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의 중요한 시장이자 경제·안보 협력국이다. 양국의 산업 협력을 강화하는 일은 앞으로도 필요하다. 다만 협력의 확대가 특정 국가의 정책 변화에 대한 의존까지 높여서는 안 된다. 정부는 통상 협상의 실질적인 성과를 확보하고, 기업은 투자와 공급망의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 국내 기술과 생산 기반을 지키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한국 산업계의 플랜B는 미국을 떠나는 전략이 아니다. 미국과 협력하면서도 미국의 정치적 변화에 흔들리지 않을 선택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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