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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법관 인선 충돌, 권한 다툼보다 헌법의 길 찾아야

경제일보 2026-09-23 15:39:50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대법관 한 자리를 둘러싼 청와대와 대법원의 갈등이 끝내 정면충돌로 치달았다. 지난 3월 노태악 전 대법관 퇴임 이후 200일 넘게 이어진 공석은 이제 단순한 인사 지연의 차원을 넘어섰다.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를 거부하고 청와대가 이를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헌법기관 간 권한 충돌로 비화했다.

양측 주장은 나름의 논거를 갖고 있다. 대법원장은 헌법이 대법관 제청권을 명시적으로 자신에게 부여하고 있는 만큼 대통령이 특정 후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제청을 요구하는 것은 제청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본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대로 청와대는 대통령 역시 국민이 직접 선출한 헌법기관이며 대법관 임명권을 갖고 있는 만큼 제청된 후보자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해석은 임명권을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청와대는 특히 이번 제청 과정에서 실질적인 협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결국 쟁점은 어느 권한이 더 크냐가 아니다. 헌법이 왜 제청과 동의, 임명을 서로 다른 기관에 맡겼느냐를 되짚어야 한다. 견제와 균형은 상대 기관의 권한을 무력화하는 수단이 아니라 서로의 권한을 존중하면서 독단을 막기 위한 장치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있다고 해서 대통령의 임명권이 무의미해지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의 임명권이 있다고 해서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는 절차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 제청권과 임명권 어느 한쪽을 우월한 권한으로 규정하는 순간 헌법이 설계한 권력분립의 취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번 사태에는 중요한 전례와 관행의 문제까지 얽혀 있다. 그동안 대법관 인선에서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사전에 의견을 조율한 뒤 제청하는 방식이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그러나 관행이 곧 헌법적 의무는 아니다. 반대로 관행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무시한 절차가 아무런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이번 사태는 결국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절차와 헌법기관 사이의 합리적인 협의 관행을 어디까지 조화시킬 것인지라는 과제를 남겼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이다. 대법관 한 명의 공백이 장기화하면 사건 심리와 재판 일정에도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재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자리는 200일 넘게 비어 있으며, 대법관 12명이 맡아야 할 상고심 사건을 11명이 분담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에 미칠 영향도 가볍게 볼 수 없다.

따라서 이제는 양측 모두 한발 물러설 필요가 있다. 그것이 어느 쪽의 굴복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헌법기관이 헌법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해법은 기존 후보를 둘러싼 공방만 되풀이하는 데서 벗어나는 것부터 찾아야 한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제청 절차와 후보 선정 기준에 대한 이견을 조율하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후보군을 검토하는 방안도 살펴볼 수 있다. 현재 법원조직법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자를 추천하면 해당 위원회가 해산된 것으로 보도록 규정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추천 절차를 밟는 방안 역시 법률에 맞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법률적·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만 특정 인사를 염두에 둔 사후적 제도 변경이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다. 헌법기관끼리 권한을 다투는 동안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뒷전으로 밀려서는 더더욱 안 된다.

헌법은 권력기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제청권도 임명권도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견제는 하되 사법의 기능이 멈추지 않게 하고, 원칙은 지키되 대화의 문은 닫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대법관 공백 사태를 풀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며 헌법이 요구하는 진정한 견제와 균형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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