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했다고 곧바로 가동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니다. 건물을 완공하고 서버를 설치해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냉각설비가 갖춰져야 연산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다. 국내 AI 인프라 투자가 실제 건설 단계로 들어서면서 전기를 언제, 얼마나 공급받을 수 있는지가 사업 일정을 좌우하는 문제로 떠올랐다.
정부는 지난 7월 하반기 업무계획에서 SK·GS·네이버 등 기업들이 추진하는 총 550조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민간투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계획이 실제 서비스로 이어지려면 부지 확보와 인허가, 전력망 접속, 서버 설치가 차례로 이뤄져야 한다. 투자 금액과 최종 개발 용량만으로는 사업이 얼마나 진척됐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4일 기업 발표를 종합하면 삼성SDS는 지난 2일 경북 구미에서 초기 전력 용량 60메가와트(M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착공식을 열었다. 지난 8월 말 구미시의 착공 승인을 받아 공사에 들어갔으며, 2028년 말 준공할 예정이다. 회사가 앞서 제시한 가동 목표는 2029년 3월이다.
구미 데이터센터는 향후 최대 120MW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초기 구축 규모인 60MW와 확장 목표인 120MW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120MW 전체가 첫 가동 시점부터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삼성SDS는 일반 서버용 공랭식과 고밀도 GPU 서버용 수냉식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냉각체계를 적용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4일 3분기 실적 발표에서 SK호라이즌이 울산과 서울에 약 180MW 규모의 신규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SK호라이즌은 인프라 운영과 확장을 맡고, 사업개발을 담당하는 SK하이퍼는 울산을 중심으로 잠재 고객과 사업 조건을 협의하고 있다. 같은 그룹 안에서도 건설이 진행되는 시설과 고객 확보를 추진하는 개발사업은 단계가 다르다.
LG유플러스는 경기 파주에 200MW급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2028년까지 4개 동을 순차적으로 가동할 계획이며, 1동은 50MW 규모로 2027년 6월 준공을 목표로 한다. 4일 3분기 실적 발표에서는 1동뿐 아니라 2·3·4동까지 고객 수요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초기 시설을 넘어 후속 동까지 수요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사업의 진척도가 높아졌다. 다만 고객 수요 확보와 각 동의 준공·가동은 별개의 과정이다.
데이터센터 용량을 비교할 때는 전체 개발계획과 전력망에서 전기를 공급받는 수전 용량, 서버 등 정보기술(IT) 장비에 실제 투입되는 전력을 구분해야 한다. 수전 용량이 200MW라고 해서 그 전부를 GPU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냉각장치와 변압·배전설비, 네트워크 장비 등에도 전력이 필요하다.
IT 장비 전력 역시 GPU 서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저장장치와 네트워크 장비 등도 포함된다. 따라서 수전 용량을 GPU의 연산 능력으로 곧바로 환산해서는 안 된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효율을 비교할 때는 전력효율지수(PUE)도 살펴야 한다. PUE는 데이터센터 전체 에너지 사용량을 IT 장비의 에너지 사용량으로 나눈 값이다. 1에 가까울수록 냉각 등 부대설비에 들어가는 에너지 비중이 작다는 뜻이다. 기업이 제시하는 수치가 설계 목표인지 실제 가동 시설에서 측정한 값인지도 구분해야 한다.
데이터센터 건설의 더 큰 걸림돌은 전력망이다. 발전소에서 충분한 전기를 생산해도 해당 지역의 송전선과 변전소에 여유가 없다면 필요한 시기에 대규모 전력을 공급받기 어렵다. 부지를 선정할 때부터 전력 공급 가능 시점과 용량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경제인협회와 국가AI전략위원회가 지난 2일 개최한 기업 간담회에서도 전력 확보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삼성SDS와 현대차, SK텔레콤, KT클라우드, 네이버클라우드, 한국전력공사 등 15개 기업은 데이터센터 부지를 검토하는 단계부터 전력 공급 가능 시기와 용량을 확인할 수 있는 행정체계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업들이 요구한 것은 전기요금 인하만이 아니다. 부지를 매입하고 설계를 진행한 뒤에야 전력 공급이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위험을 줄여 달라는 것이다. 전기를 언제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예측하기 어렵다면 건설 투자와 GPU 구매, 고객 계약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인허가 절차도 사업 일정을 늘리는 요인이다. 데이터센터는 사업 규모와 입지에 따라 전력계통영향평가와 에너지사용계획 협의, 건축허가, 교통·경관 심의 등을 거쳐야 한다. 소관 기관이 나뉘어 있어 한 절차가 늦어지면 다른 공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업계가 관계기관 협의와 심사 절차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체계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6월 9일 제정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인허가 절차 단축과 전력계통영향평가 특례를 추진하고 있다. 이 법은 2027년 3월 10일 시행된다. 관계기관의 인허가 절차를 일괄 처리하고 비수도권 AI 데이터센터의 전력계통영향평가 부담을 줄이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전력계통영향평가 면제 범위는 아직 조율 중이다. 현행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정·고시한 평가 대상 지역에서 10MW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려는 사업자에게 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새 특별법은 비수도권에서 AI 데이터센터를 신축하거나 확장하는 경우, 기존 데이터센터를 AI 데이터센터로 전환하는 경우 등에 특례를 적용하도록 했다. 면제할 수 있는 전력 용량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면제 상한을 놓고는 부처 간 의견이 다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50MW, 과기정통부는 100MW 수준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이보다 높은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50MW와 100MW는 당시 공개된 부처별 검토안으로, 확정된 면제 기준은 아니다.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면제한다고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평가 절차를 줄여도 송전선과 변전소의 물리적 용량이 부족하면 필요한 전기를 제때 공급받기 어렵다. 규제 완화와 전력망 보강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고밀도 GPU 서버를 운영하려면 냉각설비도 갖춰야 한다. GPU를 좁은 공간에 집중적으로 설치할수록 서버와 랙에서 발생하는 열이 커진다. 랙당 전력밀도가 높아지면 기존 공랭식 설비만으로 열을 관리하기 어려워 수냉식 등 액체냉각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삼성SDS는 구미 데이터센터에 공랭식과 수냉식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냉각체계를 적용할 계획이다. LG유플러스도 파주 데이터센터 1동에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를 수용할 수 있는 수냉식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냉각 방식과 랙당 수용 가능한 전력 수준에 따라 같은 규모의 데이터센터라도 실제 운영할 수 있는 서버와 GPU 구성이 달라진다.
전력망 병목은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6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연간 전력 소비량이 2025년 485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950TWh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AI 전용 시설의 전력 소비는 같은 기간 세 배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데이터센터 건설 수요는 빠르게 늘지만 발전·송전 설비와 주요 전력 장비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지역 에너지와 데이터센터를 연결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지난 2일 기업 간담회에서는 서남권 등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인근 데이터센터에 공급하고, 자체 발전설비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한 마이크로그리드를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전력 생산지와 가까운 곳에 데이터센터를 유치해 수도권에 집중된 전력 수요를 분산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은 시간과 기상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 데이터센터에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려면 에너지저장장치와 보완 전원, 기존 전력망과의 연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발전시설이 인근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달 23일 규제합리화위원회에서 AI 데이터센터 인허가 절차 개선과 시설 기준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데이터센터의 특성을 고려해 주차장과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기준을 손보고, 국산 장비와 솔루션 개발·실증에 2027년 정부안 기준 약 2000억원 규모의 신규 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확정 집행액이 아니라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계획이다.
데이터센터 사업은 착공과 전력 공급, 서버 설치, 상업 가동이 각각 다른 일정으로 진행된다. 550조원 투자 구상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하려면 최종 개발 용량뿐 아니라 최초 수전 시점과 단계별 IT 장비 수용 규모, 냉각설비 구축 상황을 함께 살펴야 한다. 인허가 절차를 줄여 확보한 시간이 실제 가동 시기를 앞당겼는지도 따져야 한다.
GPU를 얼마나 확보했는지는 데이터센터 사업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전력 공급이 늦어지거나 냉각설비가 준비되지 않으면 서버를 들여놓고도 서비스를 시작할 수 없다. 국내 AI 데이터센터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발표된 MW와 GW가 아니라 전기를 공급받아 GPU를 가동하고 고객에게 연산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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