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돈의 가치는 한 나라 경제의 체력과 정책의 신뢰를 비추는 거울이다. 환율은 단순히 통화 간 교환 비율이 아니다. 국가의 경쟁력과 산업의 흥망, 국민의 일자리와 구매력,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경제적 위상을 결정하는 전략 변수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에서 위안화의 강세 흐름과 이를 바라보는 중국 당국의 복잡한 속내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달러화와 유로화 대비 위안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국제사회는 중국에 시장 현실을 반영한 통화 절상을 요구하지만, 정작 중국은 선뜻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위안화 강세가 중국 경제의 자신감으로 이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정책 당국의 불안을 드러내는 역설이다.
대외적인 압박은 거세다. 유럽을 비롯한 주요 경제권은 중국의 위안화가 경제의 기초 여건에 비해 저평가돼 있으며, 인위적으로 낮은 환율이 중국 수출기업에 부당한 가격 경쟁력을 제공한다고 비판한다. 특히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 등 첨단·친환경 산업에서 중국이 막대한 생산 능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세계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상황에서 환율 문제는 더 이상 금융 당국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중국의 기록적인 무역흑자와 제조업 공급과잉이 다른 나라의 산업 기반과 고용을 위협한다는 불만이 확산하고 있다. 통화 가치의 왜곡이 공정한 경쟁 질서를 훼손한다는 지적은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 내부의 사정은 국제사회의 요구와 정반대다.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와 지방정부 부채, 소비 위축, 청년 고용 불안이 겹치면서 중국 경제의 내수 기반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소비가 성장을 이끌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출은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버팀목이다. 이런 구조에서 위안화가 급격히 절상되면 중국 제품의 해외 가격 경쟁력은 약화하고 수출기업의 수익성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통화 강세가 국가의 경제적 위상을 높이는 긍정적 신호이면서도, 중국에는 고용과 성장의 기반을 흔드는 위협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 기업들의 수익 구조는 급격한 환율 변화를 견뎌낼 만큼 탄탄하지 않다. 제시된 분석처럼 주요 상장기업의 순이익률 중앙값이 4.9% 수준에 머문다면 환율 변동에 따른 비용 부담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다. 수출 대금의 환산 가치가 줄고 가격 경쟁력까지 약화하면 얇은 이윤으로 버티는 노동집약적 기업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기업의 수익성 악화는 감원과 파산으로 이어지고, 고용 충격은 소비 위축을 심화시킨다. 내수가 약하니 수출에 의존하고, 수출을 지키려다 내수와 산업 구조의 전환은 늦어지는 악순환이다. 위안화 절상을 두려워하는 중국의 진짜 이유는 환율 자체가 아니라 취약해진 경제의 체력에 있다.
중국 지도부가 환율 문제에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는 일본의 플라자 합의 경험도 자리 잡고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급격히 상승했고, 일본은 수출 경쟁력 약화와 경기 둔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금융 완화와 자산시장 팽창을 경험했다. 이후 자산 거품 붕괴와 장기 침체가 이어졌다.
물론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엔화 절상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일이다. 당시의 과도한 통화 완화와 부실한 금융 감독, 구조개혁 지연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이 사례에서 얻으려는 교훈은 분명하다. 외부의 압력에 밀려 환율을 급격히 조정하고 내부의 경제 체질을 바꾸지 못하면 그 충격은 예상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외화 지급준비율 조정 등 시장 안정화 수단을 동원해 위안화 절상 속도를 조절하려는 것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이다. 급격한 변동을 막고 기업과 금융시장의 충격을 완화하려는 정책적 판단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장의 흐름을 거슬러 통화 가치를 장기간 인위적으로 관리하려는 시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환율을 억누르면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일시적으로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대가로 무역 불균형과 국제사회의 불신을 키울 수 있다. 통화 가치는 정부의 의지만으로 결정되는 숫자가 아니다. 경제의 생산성, 자본의 흐름, 시장의 신뢰가 함께 반영된 결과다.
중국이 진정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환율 방어가 아니라 경제 구조의 전환이다.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가계소득을 높이고 소비를 회복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의 부실을 정리하고 지방정부 재정의 투명성을 높이며,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국민이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소비를 미루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업에는 보조금과 저환율이라는 보호막보다 생산성과 기술 혁신으로 경쟁할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통화 강세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 체력을 기르는 것이 환율을 관리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해법이다.
국제사회 역시 중국에 공정한 경쟁과 시장 원칙의 준수를 요구해야 한다. 다만 환율 조정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통상 압박의 수단으로 삼는 방식은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수 있다. 환율은 시장의 가격 신호를 존중하되, 급격한 변동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는 정책적 조정은 필요하다. 자유로운 시장과 공정한 경쟁은 어느 한쪽의 편의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할 원칙이 아니다.
진리와 정의, 자유의 가치는 국제 경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강대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시장 원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통화와 무역을 정치적 압박의 도구로 활용한다면 자유무역 질서의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중국도 예외일 수 없다. 경제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시장의 기본 원칙을 외면할 권리까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자국 경제의 취약성을 외부의 압력 탓으로만 돌리는 태도 역시 책임 있는 경제 운영이 아니다.
위안화 강세 앞에서 중국이 멈칫거리는 것은 환율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 모델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시장을 이기는 환율정책은 없으며, 구조 개혁을 대신할 통화정책도 없다. 경제의 기본과 상식을 외면한 채 수출 경쟁력만 지키려 한다면 중국의 환율 외줄 타기는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다.
통화의 진정한 힘은 정부가 정한 환율 수준이 아니라 국민의 구매력과 기업의 생산성, 시장이 보내는 신뢰에서 나온다. 중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위안화의 강세를 억누르는 일이 아니라 그 강세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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